[전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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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전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95

전라북도 기념물 제 135호

☎ 063-838-8761

 

 

백지사터를 나와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로 향한다.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숲정이' 의 원래 뜻은 마을 근처에 있는 숲을 뜻하는 순 우리 말이라고 한다.

이 '숲정이' 라는 말이 들어간 천주교 성지가 두곳이 있다.

전주 숲정이, 그리고 이곳 여산 숲정이

그래서 처음 들었을때 나처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일은 전주 숲정이를 갈 예정이다.

 

 

가는길에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물고...걸었다.

날씨가 금새 여름내가 나는거 같다.

 

 

여산 숲정이 성지 입구

 

 

순례길..

비석이 참 이쁘다.

 

 

부사가 교우들을 심문하고 사형을 선고한 여산 동헌에서 건너다 보이는 숲정이는 지금은 숲이 아닌 논과 밭 가장자리로 변했다.

여산 본당은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했던 숲정이를 중심으로 부근 전답 4천여 평을 80년 초 이미 사들여 성지 개발에 주력해 왔다.

여산의 성지 개발 사업은 크게 성지 순례 성당과 대형 십자가 건립, 예수 성심상을 조성한 주변에 나무를 심어 여러해를 두고 숲정이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여산 순교지에서 천호산을 옆길로 넘어 천호 마을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보 성지 순례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천호산 기슭인 이곳은 여산에서 8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로 비포장 산길이었으나 1987년 전주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의 해를 맞아 말끔히 포장되어 있어 순례길이 더욱 가까워졌다.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이곳은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금산, 진산, 고산에서 잡혀온 신자들이

1868년에 순교한 곳으로 기록상 25명이나 그외에도 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이곳에서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무덤은 천호성지에 모셔져 있다.

 

 

여기에는 22명이며 .. 라고 적혀있네..

 

숲정이는 지금은 숲이 아닌 논과 밭 가장자리로 변해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라도 천주교도들의 처형은 주로 전주와 여산, 나주 등에서 이루어졌는데,

1866년 당시에는 주로 전주에서 처형되었고

1868년에는 여산에서 처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입구에서 마주한 피에타 상

 

 

 

너른 광장앞에는 제대가 있고

양쪽으로 십자가와 예수 성심상이 세워져있다.

 

 

 

 

제대 뒷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걸려있다.

 

 

여산 숲정이는 호남의 관문으로 일찍이 천주교가 전래되어 수많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순교자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순교 성지다. 

이곳에서 순교한 교우 중 17명이 고산 ‘넓은 바위’ 교우촌 사람들로, 김성첨 일가 여섯 명이 대표적이다.

 

 

 

 

순교한 22명 중 17명이 고산 널바위 사람들이었다.

특히 당시 57세의 고령이었던 김성첨 일가 6명의 치명은

대아(大雅)리 저수지에 잠겨 버린 '널바위'(전북 완주군 동상면 광암리)의 대표적인 애화(哀話)로 남아 있다.

 

김성첨은 조카 김명언을 비롯해 정규, 정언 등 3형제와 그 아들 등 3대에 걸치는 6명을 포함한 한 마을 17명의 믿음이

모두 자기가 가르친 것이라고 진술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칼 쓴 '죄인'들은 형장인 풀밭에 가서야 칼을 풀었고 얼마나 굶주렸던지

짐승처럼 풀을 뜯어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김성첨은

 "우리는 이 때를 기다려 왔으니 천당 진복을 누리려 하는 사람이 이만한 괴로움도 이겨 내지 못하겠느냐. 부디 감심으로 참아 받자."며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