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연풍성지 미사시간 (성인 황석두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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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청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연풍성지 미사시간 (성인 황석두 루카)

 

 

연풍 성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 187-2

☎ 043-833-5061

http://www.ypseongi.org/

주일, 평일  : 오전 11시미사

 

 

풍성지

충북 괴산 연풍면에 위치한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성지다.

 

이곳엔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소를 모셔둔 곳으로  해마다 많은 천주교 교우들이 찾는 곳이다.

 

먼저 황석두 루카 성인은 어떤 분이셨는지 부터 알아야 겠지

 

 

성인 황석두 루카 (1813년 ~ 1866년, 54세 순교)

 

 

그는 충청도 연풍의 병방골 평해 황씨 양반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부유한 집안의 선비였던 황루카는 19세가 되던해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향하던중

그가 묵은 어느 주막에서 천주교 신자를 만나 성교회의 도리를 듣고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천주교 교리책을 여러권 얻어 집을 떠난지 3일만에 집으로 돌아오게된다.

양반가문에 아들이 과거는 보지 않고, 요상한 책에 빠져 3일만에 되돌아 왔다.

어느 아버지가 가만 있었겠는가.. 분노가 치밀어 오른 가족들..

부친의 엄격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3년동안 벙어리 노릇을 하면서 집안 식구들을 모두 영세 시키는데 성공한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님은 속성으로 그를 신부로 승품시키려 했으나

그의 부인이 몸담고 있는 종신 허원의 수녀원이 없어서 허락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성교회에 일생을 바칠것을 서약하고, 아내와 동정부부로 살면서 일생을 교회에 헌신하며

페롤 신부님과 다블뤼 주교님의 비서로서 선교사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고, 다블뤼 주교님을 도와 한글 교리서를 편찬한다.

그러던 어느날, 천주교 박해(병인박해 1866년)때  다블뤼 주교님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포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수를 한다.

그렇게 그는 다블뤼주교님, 오베드로, 위엥신부님, 장주기 요셉 회장과 함께 1866년 3월 23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참수형으로 치명되고 만다.

 

 

 

충청도 갈매못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서 구문효수형으로 순교된 황루카의 시신은

그의 고향인 이곳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며 방곡리)로 이장되어 온것이다.

연풍...이곳이 천주교 성지가 된 이유는

신유박해 (1801년)로 인해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나고 이후 교우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심산유곡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타고, 경상도, 강원도 지방으로 삶의 터를 옮겨 신앙생활을 지켜 나가게 되었다.

그중 기슭에 있는 연풍은 문경새재와 이화령을 너어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곳이였고,

교우들이 숨어들수 있는 천혜의 은거처였던 것이다.

 

 

 

다섯 성인상과 반석

 

이곳이 바로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소다.

 

때마침 미사중이였다.

 

 

평일은 매일아침 11시에 미사가 있다고 하셨다. (월요일 제외)

너무 늦어버려서 미사에 참례하지는 못하고 서성였다.^^;;

벌써 여기는 가을인가 보다.

 

 

파란하늘과 붉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 왠지 맘까지 스산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을이 다가오자 자연스레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가듯

하느님의 사랑도 이렇게 자연스레 우리의 순교자들의 삶과 맘속에 물들어 갔겠지..

순교하며 지켜온 신앙을 나는 제대로 하고있긴 하고 있는가.. 되묻게 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황석두 루카 성인상이였다.

햇살이 비춰서 모형대로 담아낼수가 없어 아쉽다.

 

작은 경당에는 황석두 루가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성모상

 

성지 곳곳을 거닐다

드뎌 점심시간..

 

 

 

성지 신부님과 교우들이 직접 만드신 나물이란다..

배가 고파서 욕심을 부려 담았다가 어떻게 다먹나 그랬는데...

잠시후 바닥을 긁으며

쫌 더 먹을까??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