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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Peter) 축일 6월 29일 (천국열쇠, 닭이 세번울다)

 

 

성인 베드로

 

Feast of the Chair of Peter

Cattedra di San Pietro Apostolo


 
성인 성인 베드로 (Peter)
축일 6월 29일 활동년도 +64년경
신분 사도,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베드루스,페드로,페트루스,피터

 

천국의 열쇠를 받은(마태 16,19) 으뜸 사도 베드로는 신약에서 1백 82회나 그 이름이 언급될 만큼 탁월한 존재이다.

그는 베싸이다 출신(요한 1,44)으로 아버지 요나(마태 16,17) 혹은 요한(요한 1,42)의 아들로서

그의 동생 안드레아 사도와 같이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 잡던 어부였다.

결혼하여서는 가파르나움에서 장모와 같이 살았으며 부인과 아이들에 대한 얘기는 없지만

전교 여행 때는 부인을 데리고 다닌 것 같다(1고린 9,5).

그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께서 베드로 또는 아람어로 게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 바(요한 1,42) 이는 둘 다 바위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했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사도들의 명단 중에 언제나 제일 처음에 기록되었으며(마태 10,2) 다른 사도들과 같이 행동했을 때도

그의 이름만은 지적되었다(마르 1,36). 또한 그는 사도들의 대변자 역할을 했으며(마태 15,15) 천사가 가져다 준 부활의 메시지

역시 베드로에게 한 것이다(마르 16,7). 부활하신 주님도 그에게 먼저 나타나셨고(루가 24,34; 1고린 15,5)

주님으로부터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루가 22,32).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양들을 잘 돌보라”(요한 21,17)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 따라 예수 승천 후엔 유다의 후계자 선발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사도 1,15-26) 예루살렘 공의회를 주도하고(사도 15,7) 사도로서 첫번째로 기적을 행하였다(사도 3,1-11).

베드로는 으뜸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 외에도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즉 열병으로 죽어가는 그의 장모의 완쾌를 목격했으며(마르 1,31)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타볼산에서 예수의 현성용을 보고(마르 9,2) 게쎄마니의 주님의 고통에도 동참하였다(마르 14,33).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은 딸의 부활도 지켜보았으며(마르 5,37)

주님의 도우심으로 물 위를 걷기도 하였다(마태 14,28).

한편 예수께서도 베드로의 몫으로 성전세를 내셨으며(마태 17,27)

그의 배에 앉으셔서 군중을 가르치시기도 하셨다(루가 5,4).

베드로는 으뜸 사도로 손색이 없을 만큼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무척 컸다.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따랐을 뿐 아니라(루가 5,11)

다른 제자들이 예수를 떠날 때도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읍니까”(요한 6,68) 하고 믿음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잡혀가실 때에는 대제관의 종 말코스의 귀를 자르며 용감하게 저항했으며(요한 18,10)

예수께서 재판소에 끌려갔을 때 밤새도록 그 뒤를 따랐다(마르 14,54).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요한 20,3) 이도 그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자 배에서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으로 뛰어들어간(요한 21,7) 이도 그였다.

그리고 마침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약점도 성서는 많이 지적하고 있다.

 고통당하는 메시아의 개념에 반대하다 “사탄아 물러가거라”(마태 16,23)고 꾸지람을 들었으며 물 위를 걸었지만

의심하여 빠지는가 하면(마태 14,30) 주께서 피땀이 흐르도록 기도하시는데 한 시간을 깨어 있질 못하고 졸았고(마르 14,32)

죽기까지 배반치 않겠다고 약속했지만(루가 22,33) 세 번이나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기도 했다(마태 26,74).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오르실 적에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박해 때 순교가 무서워 도망치다가

주님을 만나뵙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은 후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위해 로마로 간다는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 되돌아가 순교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선과 악 사이에서 투쟁하며 넘어지면서도 일어서려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예수 승천 후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 선포에 매진하였는데,

일장 설교로 삼천 명(사도 2,41) 또는 오천 명(사도 3,8)을 회개시키는가 하면 태생 앉은뱅이를 고치어(사도 3,8)

사람들은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환자에게 닿기를 원하였다(사도 5,15).

예루살렘에선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났다(사도 12,10).

또한 사마리아(사도 8,14), 갈릴래아(사도 9,31), 릿다(사도 9,32), 사론(사도 9,35), 욥바(사도 9,36)에서 전교 활동을 하였는 바,

릿다에선 8년된 중풍환자 애네아를 고쳐주었으며(사도 9,34) 욥바에선 죽은 다비타를 살려주었다(사도 9,40).

그 후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고(갈라 2,11) 마지막으로 로마에 가서 64-65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장렬히 십자가에 매달려 그것도 죄인이라고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그의 무덤에는 세계에서 가장 웅대하고 화려한 베드로 대성전 (성베드로 성당 https://simjuliana.tistory.com/469 )

 

이 섰는데 오늘도 수천 명의 참배객들이 매일매일 줄을 서고 있다.

배, 열쇠, 닭 등이 그의 전통적 상징이고 소아시아 개종자들을 위해 두 서간을 남기고 있다.

축일은 6월 29일이다.

인생은 선과 악의 투쟁의 과정이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다가 넘어지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성인을 본받아 칠전 팔기의 정신으로 일어나자.

인생의 위대함은 실패하지 않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패할 때마다 일어섬에 있으며 최후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이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1988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