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한티순교성지 (십자가의길, 순례자 성당, 한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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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한티순교성지 (십자가의길, 순례자 성당, 한티마을)

 

 

 

 대구 한티순교성지

주소 :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5

전화번호 : 054-975-5151

http://www.hanti.or.kr/

 

 

 

대구대교구 한티 순교성지

천주교 병인박해 (1866년부터 1871년까지 계속되었던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피신하여 은거하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곳

 

이곳은 교우들의 피난처이자 처형지이며 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순교성지인곳이다.

순교사를 되살리고 피정연수를 위한 순례지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아직 공사중인곳이 많았다.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한 한티재 중턱쯤에서 마주하게된

천주교 대구교구 한티순교성지

 

 

 

한티 순교 성지에는 모두 37기의 묘가 있다.

병인박해때 순교한 조 가롤로(공소회장), 최 바르바라(조 가롤로의 부인), 조 아기(조 가롤로의 누이동생), 서태순 베드로 의 묘와

무명 순교자의 묘지 33기

 

 

순례의 길로

그묘역들을 모시곳에 십자가의 길을 할수있게 되어있다.

 

 

날씨가 흐려진다 했더니 

비가 내린다.

맘이 더 무거워 지는듯 한다.

 

 

 

한티마을이다.

한티는 큰 고개, 큰 재라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경상도 지방의 가장 오래된 공소 중에 하나이며

대구 대교구의 초석이 된 공소이다.

대구 초대 주임신부인 김보록 신부는 1882년에 한티 공소에서 19명이 고백성사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조대비의 친척인 조 가롤로가 초대 공소회장이었다.

병인박해때 그가 참살 당한후 그의 아들인 조영학(도마)가 다시 공소회장이 된다.

그들은 '선조들이 참살 당한 거룩한 순교지를 범속한 우리들이 밟을 수 없다.'

는 생각과 순교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으로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공소를 이루었다

고 저혀 있다.

 

그리고 1998년 부활절에 옛 공소를 복원한 모습이다.

비가 촉촉히 내려앉아

아프고 아파야할 이곳이

더 아름답게 보여 왠지 가슴이 더시립다. 

 

 

  

한티 교우촌의 개척자로는 볼 수 없으나 한티를 오늘의 유명한 교회 유적지로 만든 이는 김현상 요아킴이다.

서울 관철동에 살다가 1837년 낙향하여 처음에는 신나무골에서 살다가 1838∼1839년 무렵 한티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병인박해가 발생하기 몇 년 전에는 상주 구두실 출신인 조 가롤로 가정,

1865년에는 대구의 이 알로이시오 가정, 1866년에는 서익순(인순) 요한과 서철순 바오로 가정 등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척박한 한티에서 옹기, 사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을 지켜 나갔다. 고 기록되어있다.

 

 

 

 

 

한티 교우촌에는 박해 기간 동안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신자들이 적지 않다.

1861년 경상도 지방에 박해가 일어나자 칠곡 신나무골에 살던 이선이 엘리사벳 가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이선이와 큰 아들 배 스테파노가 포졸들에게 잡혀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는데, 이들 모자가 한티의 첫 순교자다.


 

 

 

수차례의 박해를 간신히 넘긴 한티 마을은 마침내 1866년 병인년의 대박해로 ‘최후의 날을 맞는다.

1868년까지 3년에 걸쳐 유례없이 혹독하게 이루어진 병인박해는 평화롭던 마을을 순식간에 피바다로 만들어 버렸고,

수십 명의 신자들이 한자리에서 몰살을 당하는 비극을 남겼다.

1868년 봄, 한티에 포졸들이 들어와 재판 과정도 없이 배교하지 않는 조 가롤로를 비롯하여 부인 최 바르바라, 여동생 조아기 등

30여 명의 신자들을 현장에서 처형하고, 달아나는 신자들은 뒤따라가서 학살하였다고 한다.

동네는 불타 없어지고 온 산 곳곳에 너무 많은 시신이 썩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매장을 하였다고 한다.  

 

 

 

한티성지 피정의 집으로 향한다.

순례자의 성당이 있는 곳이다.

정면에 보이는 곳은

한티영성관(신학교)이다.

 

 

 

 

 

성전으로 향한다.

 

해질녁 한티의 모습은

잔잔한 이야기가 흐르는듯 하다. 

 

 

  

 

 하늘 바라보며 죽는다는 것은 (한티에서)  <김영수> ▒

          팔공산 한티의 하늘은
          늘 참회처럼 푸르고도 아립니다
          바람들 깨어나 뭉게뭉게 구름꽃들 피우고
          밝히는 옹기조각들엔 은은히 불들 밝습니다
          오직 하늘 바라보며 살고
          하늘 바라보며 죽는다는 것은
          투명한 살 썩혀 기름진 땅 이루는
          기나긴 사랑입니까
          거기 알밴 적막의 초원에는
          햇살 내리는 조출한 아침 식탁 있고
          나는 언제 알몸으로 뜨거워져
          영원의 길목 덥힐까요
          십자가의 길 오르다
         '그대 숨지심'에 닿아
          아픔 황홀히 만날 때
          문득 바람들은 신발끈 다시 매고
          숲을 달리며 하늘을 달리며
          푸르게 푸르게 머리를 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