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가톨릭 상식

[천주교 세례명] 바르톨로메오 축일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8월 24일 

San Bartolomeo Apostolo 
St. Bartholomew the Apostle
(Nathanael bar Tolomai )

Bartolomeo = figlio del valoroso, dall'aramaico
Died:flayed alive at Albanopolis, Armenia; 
relics at St Bartholomew-on-the-Tiber Church, Rome, and in the cathedral in Canterbury, England 
1세기경, 치즈 상인, 미장공, 석고세공인의 주보

 

사진에 바르톨로메오 성인 석상은

로마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의 상징은 사람 가죽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전설에 바르톨로메오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서이다.

그리고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가죽끝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다.

얼굴의 주인공은 바르톨로메오가 아니라 바로 미켈란젤로다.

 

그 이유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인 '최후의 심판'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60대에 그린 최후의 심판 그림에

바르톨로메오 (나다니엘)의 가죽에 그려낸 자화상

아마도 오랜 기간동안 연이른 작업으로 망가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자조적인 평가를 표현했다고 보고있다.

 

다시 원점으로..

바르톨로메오에 생애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신 후 우선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들을 사도로 부르시고
이어서 갈릴레아로 향하신던 도중에 베사이다 출신인 필립보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는 고마운 말씀을 하셨다.
이 필립보는 전부터 예수께 대한 신비한 소식을 많이 들었고, 구세주가 바로 이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 부르시는 말씀에 즉시 순응하여 제자들 사이에 가입했으며, 기쁨을 참지 못하고 그의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갔다.

나타나엘은 그때 정원에 있는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 묵상에 잠겨 있었는데,

손님의 기척을 듣고 나와 보니 필립보가 의기양양한 태도롤 서 있었다.
그는 나타나엘에게 말하기를

 "나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라고 하였다.
나타나엘은 "나자렛인?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의심쩍어 하며 무시하는 듯한 대답을 하자
필립보는 "그러지 말고, 여러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좋으니 와서 보시오"하며 그를 끌어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주님께서는 나타나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이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하셨다.
나타나엘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하고 질문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답하시기를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이미 너를 알고 있었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그는 감탄한 나머지 그 전지하심을 인정하게 되어 저절로 그의 입에서는
"선생님은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고 고백한 후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런 고백을 한 나타나엘은 과연 누구 였을까
이분이 바로 지금 얘기하려는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였다.
즉 바르톨로메오라 함은 '톨로메오의 아들(바르)’이라는 뜻이고, 나타나엘은 그의 본명인 것이다.

 


바르톨로메오의 성품에 대해서는 이상의 예수와의 대화에서 그의 순박성이라든가, 혹은 그의 인격 등을 능히 알 수가 있으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서에도 별로 기록된 바가 없고, 다만 초대 교회의 교부들이 약간 기록하여 남겨 놓은 것밖에 없다.

역사가 에우세비오에 의하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성령 강림 후 곧 고국을 떠나 멀리 동 인도에까지 가서 각처에 복음을 전파하고,
그 다음에는 아람어로 된 마태오 복음을 가지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널리 복음을 저하고 성대한 교회를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을 거쳐 아르메니아에 도달해
그곳에서 다년 간 전교에 활약하다가 마침내 용감히 순교함으로써 생을 마쳤다고 한다.

즉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교회는 일대 성황을 이루었으나, 그 대신 이교 사제들의 증오를 사게 되었던 것이다.
푸릴미오의 대를 이어 그 형 아스티아제스가 왕위에 오르자,

이교 사제들은 그를 선동하여 바르톨로메오를 체포케 하고 잔인한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알바노 시에서 사도의 순교는 이루어졌다.
포악한 그들은 사도의 전신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내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며 머리를 베는 등 갖은 혹형을 가했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 성인을 상징할때 살 가죽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거룩한 유해는 알바노 시에 정중히 매장되었다가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다라지방으로 옮겨졌고,
6세기에 이르러서는 시칠리아 섬 근처에 있는 리파리 섬에 이송되어 잘 보관되어 있었다.

839년에 이르러서는 침략자 사라센 인들의 능욕을 면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베네벤토에, 983년에는 로마로 운반되었고,
오늘날에는 티베르강 가운데 있는 한 섬에 건축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에 마련된 아름답고 고운 홍대리석 영구 속에 고이 모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