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 성녀 가타리나 축일 11월25일 (설교가들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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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성녀 가타리나 축일 11월25일 (설교가들의 수호성인)

 

성녀 가타리

Saint Catherine of Alexandria  

Santa Caterina d’Alessandria Martire

설교가들의 수호성인

 

 

성인 성녀 가타리나 (Catherine)
축일 11월 25일 활동년도 +310년경
신분 동정순교자 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같은 이름

까따리나,카타리나,캐서린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10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오던 성인 중의 한 명이지만 성녀에 대한 자료는 분명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성녀 카타리나는 알렉산드리아의 상류 가정 출신으로 학식이 뛰어난 미모의 처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으며, 막센티우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는데, 이 놀랍고 뛰어난 논쟁으로 말미암아 50여 명의 이방인 철학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만일 배교할 의향만 있으면 황제와 결혼시켜 주겠다는 회유책을 거부하고 두 시간 동안 매를 맞은 뒤에 투옥되었다. 그녀의 독방에는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큰 못을 박은 바퀴에 의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구경꾼 여러 명은 그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굳은 신앙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중에서 2백여 명이 개종한 후 곧 참수를 당하였다.

그로인해 마침내 분을 이기지 못한 관리들은 그녀를 참수하였다. 이때 그녀를 덮었던 수건에는 피가 아니라 우유가 묻어나왔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은 시나이 산으로 옮겨졌으며(천사에 의하여), 그곳에 정교회 수도원이 세워졌다. 지금도 이 수도원은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 5월 30일)가 들은 신비스런 목소리의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철학자, 처녀 그리고 설교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설교가들의 수호성인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4세기 초 이집트의 로마 제국을 다스리던 막시미아노 황제는 잔인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다. 이때 그리스도인을 투옥시키고 우상을 숭배하는 막시미아노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성녀였다. 황제는 여러 대학자를 불러 성녀와 토론을 시켰다. 그러나 성녀의 명쾌한 답변과 날카로운 질문에 오히려 모두 손을 들고 가톨릭의 도리가 진리임을 받아들이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크게 진노한 황제는 학자들을 모두 사형시켰다.
 
가타리나 성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미모가 뛰어났고 학식 또한 깊어 철학을 연구하였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어느 은수자한테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세상 학문을 초월한 천상의 진리가 아닌가!” 하고 깨닫고는 곧 세례를 받았다. 또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검소하게 수도생활을 하였다.
 
앞서 말한 사건으로 황제는 성녀를 직접 심문하였다. 황제는 가타리나를 위협하기도 하고 감언이설로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성녀의 굳센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두 시간 동안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그녀에게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주었고,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전한다. 또한 성녀의 신앙에 감동한 군인들이 개종한 뒤 곧바로 참수당하였는데, 그 수가 2백여 명에 이르렀다. 성녀 역시 참수로써 순교의 월계관을 받는데, 이때 성녀를 덮은 수건에 피가 아닌 우유가 묻어나왔다고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의 시신은 천사들이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뒤 시나이산 수도원이 성 가타리나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성녀는 310년경 임종하였고, 축일은 11월 25일. 철학자와 처녀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경향잡지, 2007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