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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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생활정보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에서 였다.




오드리 햅번 (Andrey Kathleen Ruston)

1929 (벨기에) - 1993

여자들도 사랑 할수 밖에 없는 여자 오드리 햅번

173.7cm의 키,49kg의 몸무게, 20인치의 가는 허리와 갈색의 맑은 눈망울,

이것만으로 오드리 햅번을 정의 할수는 없다.

그녀의 아주 특별한 사랑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오드리 햅번을 가르쳐 준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해 만인의 연인이 되었던 오드리 햅번.

1953년 24살이었던 오드리 햅번은 영화속의 앤공주처럼 청순하고 순진한 모습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같이 살지 못했던 그녀는 12살 차이가 났던 멜 테러에게서 따뜻한 부정을 느낀다.

멜은 언제나 따뜻하고 자상하게 오드리 햅번을 보살펴 주었고, 그녀는 그런 멜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2살의 나이 차이에 2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멜 테러와

1954년 결혼식을 올린다. 우아하고 사랑스런 천사 오드리 햅번의 결혼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축복의 박수를 보낸다. 결혼후 1964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는 영화사상 처음으로 일만달러의 개런티를

받는등 배우로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이즈음 멜 테러는 외박이 잦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남편의 말을 믿고 신뢰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남편의 외도 소식은 믿을수 없는 현실이었다.

13년 동안이나 부부생활을 했던 두 사람은 이렇게 헤어지고 만다.

1968년의 일이다.

이혼 후 오드리 햅번의 영화활동은 저조해진다. 하지만 배신감으로 다친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러던중 그녀의 정신과 주치의였던 아홉살 연하의 안드레아와 다시 결혼한다.

그러나 안드레아 역시 독신남 행세를 하며 바람을 피운것이다. 결국 그와 이혼하기로 결정한다.

그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오드리 햅번을 만날수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스크린 밖에서 천사로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 역을 자칭해 세계 오지에 사는 어린이들의 구호에 앞장선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여신 같았던 오드리 햅번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아름답던 눈매에 주름이 생기고 곱던 피부도 늙어 갔지만 아무도 이 여배우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전성기 시절보다 더욱더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소말리아에서 자선 활동을 벌이던 그녀의 모습은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녀를 따라 도움의 손길을 주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갔다.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햅번은 스위스 어느 아름다운 호수가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는 죽기 전 아들에게 이런말을 남긴다.



"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든은 상처로 부터 복구돼야 하며, 낡은 것으로 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 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 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 부터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들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던 오드리 햅번은

소말리아에 가서야 진짜 사랑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랑의 모습을 보고 떠날수 있어서 행복하다" 고 했던 오드리 햅번.

그녀는 죽어서도 우리에게 영원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