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가톨릭 상식

[천주교 세례명] 성인 루카 축일 10월18일

성인 루카 축일 10월 18일
 

성인 성인 루카 (Luke)
축일 10월 18일 활동년도 +1세기
신분 복음사가,증거자 지역
같은 이름

누가, 루가, 루까, 루카스, 루크

 

루카는 마태오, 마르코, 요한과 더불어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저자 중의 한 사람이다. 루카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으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루카의 고향은 당시 학교 교육의 중심지인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였다. 기원전 40년 경에 이 도시에는 이미 가톨릭 신자 단체가 조직되어 있었고, 루카는 그 단체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의사 청년이었다. 루카는 요즘말로 우등생이었다. 그리스어에 능숙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고, 학문을 넓히기 위해 그리스와 이집트를 여행하기도 했다.
 
특히 루카는 안티오키아에서 전교를 하고 있었던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보인다. 루카는 사도들을 존경하였고, 특히 바오로 사도를 잘 따랐다.
 
루카는 바오로 사도의 그림자였다. 바오로 성인의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사랑하는 의사 루카와 테마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콜로 4,14)라는 구절이 있고,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에도 “나의 협력자인 마르코와 아리스다르코스와 테마스와 루카가 그대에게 인사합니다”(필레 1,24)라는 문장이 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도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2티모 4,11)라고 나와있다. 루카는 중요한 시기에 늘 바오로 사도 옆에 있었던 셈이다.
 
루카는 또 바오로의 제2차 전도여행을 옆에서 수행하며 함께 고난을 겪으며 힘껏 도왔으며, 바오로 사도가 마케도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도 함께 있었다. 또 바오로 사도가 제3차 전도여행 도중, 트로아스에 도착되었을 때 루카는 급히 그곳으로 가서 상봉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루카는 줄곧 바오로 사도를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바오로 사도가 카이사리아 감옥에 갇였을 때도, 로마에 호송되어 형장에 끌려 나갈 때도 그는 늘 옆에 있었다.
 
루카는 초대 신자들 간에 대단한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우리는 형제 한 사람을 티토와 함께 보냅니다. 이 형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2코린 8,18)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형제 한 사람’은 바로 루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오로 사도 및 루카 복음사가 시대에 벌써 주 예수께 대한 그릇된 말들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루카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릇된 진리가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올바른 진리를 저술로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루카는 바오로 사도의 권유에 따라 복음서 및 사도행전을 집필하게 된다.
 
루카는 이를 위해 친히 성모 마리아를 찾아뵙고 주님의 탄생전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었다. 그래서 루카 복음의 특징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다루지 않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아기예수의 잉태부터 어린 시절의 일화가 비교적 소상히 나와 있다.
 
또한 직업이 의사였기에, 특히 병자들에 대한 치유에 대해 관심이 많아, 이를 복음서에 많이 수록했다. 루카는 또한 사제직에 대해서는 면밀한 관심을 갖고 복음서를 썼다.
 
루카의 저서로서는 또 초창기 교회사를 담은 사도행전이 있다. 28장 중 앞부분 12장은 베드로 사도에 관한 내용이고, 뒷부분은 바오로 사도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바오로 사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자신에 대해서는 한 구절도 없다. 루카 복음사가의 겸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루카는 신앙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이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집필가로서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만 앉아있는 학자가 아니었다. 바오로 사도가 67년 로마에서 장렬히 순교하자, 루카는 그리스로 건너간다. 그곳 아카이아 지방에 전교한 그는 이후 소아시아 지방에 가서 주님을 위해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복음을 전하다 84세를 일기로 귀천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