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세례명] 아모스 축일 3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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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성당 세례명] 아모스 축일 3월31일

성인 아모스
 

St. Amos 

Sant’ Amos Profeta  

성인 성인 아모스 (Amos)
축일 3월 31일 활동년도 +8세기BC
신분 구약인물,예언자 지역
같은 이름

구약성서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세 번째 책인 아모스서의 저자인 성 아모스(Amos)는 정의의 예언자로서 예언-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Jerusalem)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1,1). 다윗 왕권 계승 사화에도 등장하는(2사무 14,1-24) 이 마을은,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염소나 양 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다.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는데(7,14),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속성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되었던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칼집을 내던 목축업자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돌무화과나무 재배에 종사했다는 사실에서 여러 지역 특히 셰펠라(Shefela) 지역을 자주 여행하였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모스는 정치, 문화, 농업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던 지역 출신으로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원 세계에서 터득한 언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할 수 있었다.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기원전 8세기 중반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과거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함으로써 승리에 도취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이 확대되어 괄목할 정도로 부가 증가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빈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가중시켰다. 부자들의 사치와 착취가 사법권을 등에 업고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언자들의 경신례가 화려해지고, 법과 정의를 존중하고 실천하려는 의지 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식이 성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좀 더 정확하게 기원전 760-750년경 예언자 아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모스는 남부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실의 성소였던 베델을 중심으로 예언활동을 전개하였다(7,10-17). 따라서 그의 사명은 보편적인 중요성을 지님과 아울러 일치의 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한 백성으로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