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축일 12월22일 이주민들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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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축일 12월22일 이주민들 수호성인

성녀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

ST. FRANCES XAVIER CABRINI
St. Maria Francisca Xavera Cabrini

이주민 (이민자)들의 수호성인
 

성인 성녀 프란치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Frances Xaveria Cabrini)
축일 12월 22일 활동년도 1850-1917년
신분 설립자 지역 미국(USA)
같은 이름

방지가,프란체스까,프란체스카,프란치스까,프랜시스,하비에르

프란체스카 사비에를 카브리니는 미국 시민중에서 최초로 성인에 시성된 분이다.

농부인 아고스티노 카브리니(Agostino Cabrini)와 스텔라 올디니(Stella Oldini)의 13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인 성녀 카브리니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산탄젤로 로디지아노(Sant'Angelo Lodigiano)에서 1850년 7월 15일에 태어나 마리아 프란치스카 사베리아(Maria Francisca Xaveria, 또는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성녀 프란치스카는 학교 교사가 될 꿈을 꾸었으나 18세 때 고아가 되자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건강상의 문제로 두 공동체로부터 입회를 거부당하였으나, 1874년에 안토니우스 세라티(Antonius Serrati) 몬시뇰의 초청을 받고 곤란한 상태에 빠진 섭리의 집이란 고아원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집의 설립자인 안토니아 톤디니(Antonia Tondini)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토디(Todi)의 주교는 프란치스카로 하여금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녀는 7명의 동료들과 함께 코도뇨(Codogno)의 버려진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으로 이주하여 소녀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심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1880년 주교의 승인을 받은 즉시 그루멜로(Grumello), 밀라노(Milano) 그리고 로마(Roma)로 퍼져나갔다.

1889년 성녀 프란치스카는 미국 뉴욕(New York)의 대주교 코리건(Corrigan)의 초청으로 뉴욕으로 가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성녀 프란치스카가 설립한 성심의 선교 수녀회는 미국에까지 확장되었으며, 1892년 뉴욕의 콜럼버스(Columbus)에 첫 번째 병원을 개설하였다. 그 후 중남미와 영국으로 진출하였고, 1907년에는 성좌로부터 회헌의 승인을 받았다. 1917년 12월 22일 그녀가 시카고(Chicago)에서 운명할 즈음에는 이미 50개 이상의 병원과 학교, 고아원과 수도원 등 괄목할만한 발전을 하고 있었다.

 

1917년 12월 22일, 그녀는 자기 회의 병원 증축을 위해 시카고 시에 체류중에 콜롬버스 병원에서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67세, 그 유해는 뉴욕에 이송되어 마사 카브리니 여자 고등학교 부속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그녀는 1946년 7월 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을 받았다.


 

 



그녀는 1909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고, 1938년 11월 13일에 복자품에 올랐으며, 1946년 7월 7일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시성됨으로써 미국 시민으로는 첫 번째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이주민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