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 요한 칸시오 축일 12월23일 (폴란드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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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요한 칸시오 축일 12월23일 (폴란드 수호성인)

성인 요한 칸시오

St.John Cantius(JOHN of Kanty)

San Giovanni da Kety (Canzio) Sacerdote

 

폴란드 수호성인
 

성인 성인 요한 칸시오 (John Cantius)
축일 12월 23일 활동년도 1390-1473년
신분 신부,성서학자, 물리학자 지역 폴란드 켕티(Kenty)
같은 이름

요한 깐시오,요안네스,요한네스,조반니,조안네스,조한네스,존,죤,칸시우스,칸티오,칸티우스

 

성 요한 칸티우스(Joannes Cantius, 또는 요한 칸시오)는 1390년 6월 23일 폴란드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의 켕티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형편인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Stanislaus)와 어머니 안나(Anna)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한은 태어난 마을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1413년 크라쿠프(Krakow) 대학에 입학하여 1417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143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모교에서 성서 강의를 맡았다. 1443년경에 그는 터키에서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했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Roma)를 걸어서 순례하였다.


그는 설교로 매우 유명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비해 명성이 너무 높아 그만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올쿠스즈의 본당사제로 봉직하게 되었다. 영혼들을 돌보는 사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는 재차 크라쿠프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운명할 때까지 평생 동안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면서 16권의 방대한 강의록을 남겼다. 또한 그는 위대한 신앙인으로 처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교수 그리고 생활의 엄격성은 물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증거하며 살았다.

 

어느 날 성 요한 칸시오는 길을 가던 중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성인이 가진 것을 다 빼앗은 뒤 더 가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성인은 그게 전부라고 대답했고 강도는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뒤 성인은 몸을 추스르면서 외투 안쪽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닢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강도에게 가진 것이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성인은 도망가는 강도를 뒤쫓아 “내가 아까 가진 것이 없다 했는데 여기 동전 몇 닢이 더 있었다.”고 말했다. 기가 막힌 강도는 오히려 성인에게 자신이 빼앗은 것 전부를 돌려주고 떠났다. 성인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다.
 
이처럼 성인은 지나칠 정도로 정직한 성품을 지녔다. 또 겸손하고 검소한 성품은 따를 자가 없었다.

켕티의 요한은 1690년 시복되었으며, 1737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Lithuania)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크라쿠프(Krakow)의 성 안나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