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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상식

[천주교 세례명] 성 빈첸시오 드 폴 축일 9월 27일

 

성인 성인 빈첸시오 드 폴 (Vincent de Paul)
축일 9월 27일

활동년도

1581-1660년
신분 신부,설립자

지역

같은

이름

뱅상,빈센트,빈첸시오아바오로,빈첸시우스,빈첸티오,빈첸티우스,

빈켄티오,빈켄티우스,원선시오

 

프랑스의 농부인 쟝 드 폴과 베르트랑드 드 모라스의 6남매 중 셋째 아들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는

프랑스의 프루이(Prouy)에서 태어나 닥스(Dax) 대학교와 툴루즈(Toulouse)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16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605년 그는 어떤 부인의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마르세유(Marseilles)에 갔다 돌아오던 중에 해적들에게 잡혀 튀니지에서

노예로 팔려가는 불운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1607년 아비뇽(Avignon)으로 탈출하였고, 그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로마(Roma)로 갔으나

1609년에 앙리 4세에 대한 비밀 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때 그는 파리(Paris)에서 발로아의 마르그리트 왕비의 전담사제가 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업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618년 그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을 파리에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1625년 그는 선교회를 설립했는데 이 회는 '빈첸시오회와 라자로회'로 알려졌고, 주로 농부들에게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본당 단위의 회를 구성하였으며, 1633년에는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3월 15일)과

더불어 '애덕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병원과 고아원을 세웠으며,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대속하였고 새로운 신학교를

세움으로써 사제 양성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해외 선교사 파견을 물론 프롱드 전쟁의 희생자 구호소를 세웠고 또 영적인 저술을 남겼다.

귀족적이고도 충성스러운 성격을 지녔던 그는 인간의 고통과 비참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다 바친 것이며,

그러한 인간악을 유발하는 환경을 제거하는데 적극성을 내보인 탁월한 인본주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1737년 6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885년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