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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성당 세례명] 성인 골롬바 (골룸바) 축일 6월9일

 

 

성인 골룸바


st. columba of Ireland

Sanctus Columba Hiensis

San Columba di Iona Abate

 

  북 아일랜드 도시 데리의 수호성인

 

성인 성인 골룸바 (Columba)
축일 6월 9일 활동년도 521-597년
신분 신부,수도원장,선교사 지역 아일랜드 gartan 출생 /  영국 이오나(Iona) 사망
같은 이름

골롬바, 꼴롬바, 꼴룸바, 콜럼, 콜롬바, 콜룸바, 콜름실

 

이오나의 성 골롬바

콜(Colm), 콜럼(Colum) 그리고 콜름실(Colmcille)로도 알려진 성 콜룸바(또는 골룸바)는

아일랜드 더니골(Donegal)의 가탠에서 왕가의 후예들인 페들리미드와 에트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마도 위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세례를 받았고, 모빌에서 교육받고 여기서 부제가 되었다.

그런 후 그는 렌스터(Leinster)에서 수학하였으며, 클로나드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에는 성 모비의 지도하에 글라스네빈으로 갔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하여 543년경에 이 도시가 소개되었을 때,

그는 얼스터(Ulster)로 가서 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당에서 설교하고 수도원을 세우면서 약 15년을 지냈다.

그런 후 563년경에 이 지역을 떠났다.

여기에는 상당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그는 아일랜드에 도착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시편(핀니안 소유) 사본을 처음으로 복사하였는데,

이것이 성 핀니안(Finnian)과 논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핀니안이 이 사본을 요구하자, 국왕 디아르메이드는 콜룸바의 사본은 핀니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판정하였다.

이렇게 되자 콜룸바는 디아르메이드에게 칼을 뽑게 되었는데, 이것은 콜룸바와 함께 성소를 찾아온 콘노트의

쿠난이 디아르메이드의 부하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양가 사람들의 끝없는 혈전이 벌어졌는데, 큘 드렘느 전투에서는 약 3천 명의 사람이 죽었다.

텔타운에서 개최된 시노드(Synod)는 콜룸바에게 책임을 물어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 결과 콜룸바는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정하였으며, 수많은 외인들을 개종시킴으로써 죽을 때까지 보속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하여 563년에 그는 12명의 친척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연안에 있는 이오나로 갔으며,

여기서 수도원을 세웠는데 아일랜드 교회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픽트족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였으며, 브루드 국왕을 개종시켰고,

마침내 픽트랜드 전역을 복음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큰 성과가 나온 이면에는 큰 기적이 하나 있었다.

네스 강에는 큰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콜룸바가 성호를 긋고 기도함으로써 이를 퇴치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고, 기적에 대한 명성으로 인하여 수도원의 방문자들이 줄을 섰다.

콜룸바가 서방 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오나 출신 수도자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의 회칙은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회칙이 정착되기 전까지

전 유럽에서 통용되었다. 그는 성령의 기쁨을 안고 살은 사람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