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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상식

[천주교 세례명] 헬레나 축일 8월18일

 

성녀 헬레나(Helena, 250-330년경)

축일 : 8월 18일

신분 : 황후

수호성인 : 염색업자, 바늘과 못 제조업자

상징 : 십자가, 십자가의 못, 황후 복장, 왕관, 교회 모형

같은 이름 : 헤레나, 헬렌

 

 그리스어로 ‘횃불’을 뜻하는 헬레네(ελενη)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또는 ‘달[月]’을 뜻하는 그리스어 셀레네(σεληνη)와 관련된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 신의 딸의 이름으로, 교회에서는 4세기 로마 제국의 통치자인 콘스탄티노 대제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성녀 헬레나 황후는 말년에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견한 이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이름을 사용한 현대인으로는 미국 태생의 장애인 작가이자 강연자인 헬렌 켈러가 유명하다. 

성녀 헬레나(Helena, 250-330년경)는 로마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인이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 306-337 재위)의 어머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 관용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 활동의 자유를 허락했다.

 성녀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녀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성녀의 고향은 소아시아 비티니아 주에 있는 드레파눔이라는 곳이었다. 성녀의 집안은 명문이 아니라서 재산도 넉넉하지 못했지만, 성녀는 아름다운 미모와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성녀는 그곳에 배속 근무 중인 로마의 장군이었던 콘스탄티오 클로루스의 눈에 들어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탄생했다. 그러나 성녀의 남편은 황제가 될 수 있는 부제로 임명되자 부인인 성녀를 버리고 황제 혈통을 이어받은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이로써 콘스탄티오는 자기의 야망대로 로마의 황제가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아들 콘스탄티누스도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어머니 성녀 헬레나를 ‘고귀한 여인’이라는 칭호를 내려서 공경하도록 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성녀 헬레나는 황제의 어머니로서의 부와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교회를 위하여 일했다. 무엇보다 성녀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지순례를 하고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찾는 일에 노력했다. 전승에 따르면, 성녀는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를 세 개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께서 못 박히실 때 매달렸던 십자가였다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십자가를 발견하는 일화는 많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성녀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함께 위엄 있는 모습으로도 자주 묘사되지만, 성녀에 관한 그림의 주된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순간과 그것과 관련된 기적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화가인 세바스티아노 리치(Sebastiano Ricci, 1659-1734)는 전승으로 내려오는, 성녀 헬레나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감동의 장면을 바로크 회화의 특징답게 박진감과 운동감이 넘치도록 표현했다. 성녀는 맨 처음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를 세 개 발견했을 때 어느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두 강도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성녀는 때마침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던 곳으로 가서 세 개의 십자가 중, 예수님이 못 박혔던 십자가를 죽은 사람에게 갖다 대었더니 그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림에서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성녀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중심에 서 있다. 성녀 헬레나는 보통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고 화려한 복장에 망토를 두르고 위엄을 갖춘 황후의 복장으로 십자가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성녀는 아름다운 복장을 하고서 커다란 십자가를 향해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도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십자가를 향해 경배하고 있다. 하늘의 천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세 개의 못과 예수님의 가슴을 찔렀던 창을 손에 들고 있지만, 이들 역시 십자가의 놀라운 기적에 환호하고 있다. 성녀 헬레나는 황후로서의 권세와 위엄보다는 영혼 구원의 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아내어 공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교회는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공경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28)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6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골고타 언덕에 주님 무덤 성당(성묘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함께 5월 21일에 축일을 기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