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헝가리의 스테파노 축일 8월16일

 

성인 스테파노

Santo Stefano di Ungheria Re
 

성인 성인 스테파노 (Stephen)
축일 8월 16일 활동년도 969/970?-1038년
신분 지역 헝가리(Hungary)
같은 이름

스더,스테파누스,스테판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나오는 축일인 12월26일  스테파노 (https://simjuliana.tistory.com/2659) 와는 다른 인물이다.

 

헝가리 게자(Geza) 대공과 그의 아내 아델라이데(Adelaide)의 아들로 태어난 바이크(Vaik)는 10살 때에 세례를 받고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는 훗날 하인리히 2세 황제가 된 바이에른(Bayern) 공작의 누이동생인 기셀라(Ghisela)와 결혼했고,

 997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마자르족(Magyars)의 통치자로 군림하였다.

그는 일련의 그리스도교적인 정책을 펼쳐 성공을 거두었고, 1001년에는 헝가리의 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성 스테파누스 왕은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4월 23일)의 지도하에 교계제도를 구성하고 교회 재건을 도모하며,

온 나라를 평화롭고 지혜롭게 다스림으로써 헝가리 국가를 창건하고 그리스도교화 시킨 최초의 헝가리 왕이었다.

그는 자신이 후계자로 여겨 왔던 신심 깊은 아들 성 에메리쿠스(Emericus, 11월 4일)가 사냥 도중 사고로 죽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친척들간의 암투와 음모로 큰 시련을 겪고, 말년에는 건강마저 악화되어 고통을 받았다. 그는 1038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사망하였다.

성 스테파누스가 사망한 후에도 헝가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었으며,

묘지를 참배하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1083년에 라디슬라스 1세 왕은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허가를 받아 헝가리의 주교들과 수도원장,

고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여 그의 유해를 장엄한 예식으로써 공경하도록 결정하였다.

그와 그의 아들 그리고 아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성 게라르두스 사그레도(Gerardus Sagredo, 9월 24일)의 유해는

부다페스트의 성모 성당에 안치되었는데, 1686년에 부다페스트는 터키인들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는 성 스테파누스의 축일을 9월 2일로 선포하고 전세계 교회에서 공경하도록 하였다.

한편 헝가리의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2000년 8월 21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 스테파누스 성당에서

성 스테파누스를 그리스 정교회의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성 스테파누스는 그리스도교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리된 1054년 이후

서방교회의 성인이 동방교회에서도 성인으로 공식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