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세례명] 크레센시아 축일 6월15일
본문 바로가기

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성당 세례명] 크레센시아 축일 6월15일

The Road to Calvary (+ The Martyrdom of Saints Vitus, Modestus and Crescentia, verso) , ca. 1520 The Road to Calvary (+ The Martyrdom of Saints Vitus, Modestus and Crescentia, verso) , ca. 1520

성녀 크레센시아

St. Crescentia

 

성 비투스의 유모, 성 모데스투스의 부인
 

성인 성녀 크레센시아 (Crescentia)
축일 6월 15일 활동년도 +300년경
신분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크레센씨아,크레센티아,크레셴시아,크레스켄티아,크레쎈씨아

 

전승에 의하면 성 비투스(Vitus)는 시칠리아(Sicilia) 섬에서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신봉하는 사람이었으나 유모인 성녀 크레스켄티아(또는 크레센시아)와 그녀의 남편이자 가정교사였던 성 모데스투스(Modestus)는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감화된 성 비투스는 12세 때에 그들의 인도로 남몰래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결국 총독의 힘을 빌려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발까지 했다. 총독은 훈계와 고문까지 가하며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실망한 아버지는 세상의 쾌락이나 아름다운 여성을 이용해 아들의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이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성 비투스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유모 부부와 함께 집을 나와 배를 타고 오늘날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Taranto) 만(灣) 서북방에 위치한 루카니아(Lucania) 지방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잠시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하며 보냈으나 곧 주위의 이교도들에 의해 고발되어 재차 법정에 서게 되었고 로마(Roma)까지 끌려갔다.

   로마에서 성 비투스는 하느님께 기도하여 여러 기적을 행하였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를 가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아들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상에게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자 성 비투스와 그 일행은 마술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갖가지 고문을 당했다. 전설에 의하면 납과 기름과 역청이 펄펄 끓는 가마 속에 세 사람을 던져 넣었지만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재판관은 그들을 맹수의 밥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이 또한 맹수들이 양순해져 덤벼들지 않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더욱 참혹한 고문을 가해 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성 비투스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특히 독일과 그 인근 지방에서 활발히 행해졌고, 그의 유해 일부가 작센(Sachsen)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상본을 보면 보통 한 소년이 순교를 상징하는 팔마 가지를 손에 들고 있거나 펄펄 끓는 가마 속에서도 살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성 비투스는 배우와 무용수, 간질환자의 수호성인이며 중세 유럽에서 공경 받던 14명의 구급(救急) 성인 가운데 한 명이다. 중세 후기 독일과 라트비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성인의 축일에 성인상 앞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지냈는데, 그 춤이 인기를 얻어 ‘성 비투스의 춤’(Saint Vitus Dance)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간질병이나 신경장애 같은 병을 지닌 이들이 성 비투스의 춤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또한 폭풍우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