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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마크리나 축일 7월19일 Macrina the Younger

성녀 마크리나

Macrina the Younger
 

성인 성녀 마크리나 (Macrina)
축일 7월 19일 활동년도 330-379년
신분 동정녀 지역
같은 이름

마끄리나,마크리나

 

성녀 마크리나는 같은 이름의 성녀 마크리나(1월 14일)의 손녀딸이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

그리고 세바스테(Sebaste)의 성 베드로(Petrus, 1월 9일) 형제의 큰 누이였다.

그녀는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성서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12세 때에 약혼을 했으나 약혼자가 죽음으로써 그녀는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녀와 모친은 폰투스(Pontus)의 가족 영지로 가서 공동체를 이루고 기도와 관상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이 공동체의 우두머리였다.

 

 

거룩한 마크리나의 생애  

1. 문학유형과 중요성
 
『마크리나의 생애』는 그녀의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저술되었는데,

저술 연대는 대개 빨라도 380년 후반이거나 늦어도 382-383년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의 문학유형은 서간 형식으로 된 성인전기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철학적 삶의 모델에 대해서 다루는 일종의 철학적 전기이며, 한 여성의 생애에 대한 그리스도교 최초의 전기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자기 누이의 생애에서 그가 다른 작품들 안에서 설명하는 금욕적이고 영적인 가르침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설을 뽑아내고 있다. 중심주제는 여성들 역시 철학적 삶에 참여하여 완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도 철학적 삶을 통해 여성의 조건과 인간 본성을 극복하고 천상적 삶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 작품의 역사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다. 예컨대 바실리우스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역사 혹은 더 일반적으로 그들 가문의 역사, 4세기 그리스도인 삶이나 전례의 역사, 자주 수도승생활의 역사 자료로 이 작품을 이용하곤 한다. 이러한 이용은 이 작품의 한 측면에 국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한 가정의 삶, 더 나아가 4세기 소아시아의 한 주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에 관해 많은 귀한 가르침을 제공해준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삶의 이상을 제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코루스(A. Chorus)의 다음 주장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크리나의 생애』를 고대의 가장 훌륭한 성인전기라고 부를 수 있다.”2)
 
 
2. 철학의 이상
 
그레고리우스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은 ‘철학’의 이상이다. 그가 서문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마크리나는 바로 철학을 통해서 ‘인간적 덕행의 절정에’ 도달하였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점차 이런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스티누스에게 있어 참된 철학은 그리스도교 교의인 계시진리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철학이란 용어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만일 당신이 철학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님과 당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소?”3) 즉 참된 철학은 신앙을 통해 고무된 윤리적 삶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이 용어를 그리스도인들의 언어에 통합하였다. 그들은 자주 독자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철학에 매우 다양한 의미들을 부여하였다. 여기서는 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마크리나의 생애』에서는 ‘철학’을 ‘수도승생활’과 동의어로 볼 수 있다. 철학이란 단어의 이런 의미는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모나코스(monachos), 프론티스테리온(phrontèristion)과 같은 전문 용어들은 다음 사실을 잘 증언해 주고 있다. 즉 마크리나는 확실히 수도승적 환경 안에서 자기 이상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바실리우스에게 있어 당시 그리스도인 삶의 이상이 모든 세례자에게 제시되었고 수도승생활은 그것의 보다 더 완전한 실현일 뿐이었다. 이 점에 관해 그레고리우스는 자기 형의 견해와 비슷하다. 즉 철학의 이상은 수도승생활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인 삶의 완전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철학적 이상의 일반 특성들을 그것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수도승적 가치들로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마크리나에게 있어 철학과 수도승생활은 사실상 일치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 철학적 이상의 일반적 특성
 
이 일치는 그레고리우스로 하여금 ‘철학적’ 전기를 위해 서간 형식을 선택하는 것을 쉽게 해주었다. 그는 한 인물의 생애 이야기를 통하여 철학적 이상을 조명해 나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특성은 진보에 대한 것이다. 완전함이 지속적인 진보로 이루어진다는 이 주제는 그레고리우스의 핵심 주제로서 『마크리나의 생애』에서 자주 나타난다. 즉 만일 마크리나가 덕의 정점에 도달했다면, 그것은 ‘부단히 덕에 나아가는’(10) 삶을 통해서 이다. 그의 철학은 ‘그것이 드러내는 선이 증가함에 따라 보다 큰 순수함으로 부단히 나아갔다.’(11) 그레고리우스는 이 진보를 가능케 했던 마크리나 생애의 몇몇 사건들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나우크라시우스의 죽음, 엠멜리아의 죽음, 바실리우스의 죽음, 페트루스의 사제서품(14) 등은 그녀에게 있어 덕행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크리나의 생애』는 마크리나의 철학적 삶은 사실상 욕정들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관상에 바쳐진 천사적 삶이며 또한 사랑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그레고리우스는 마크리나를 천사와 비교하면서 우리를 본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또 이후 수도승 전통 안에서 중요한 주제가 될 ‘천사적 삶’이라는 주제로 안내한다. 천사적(12; 15), 천상적(15), 빗물질적(5; 11)이란 형용사들은 모두 마크리나가 감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동시에 영적이고 이성적인 고차원적 실재들(18)에 대한 관상에로 나아갔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본성을 초월해 고양된’(1) 자기 누이에 대해 말하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마크리나는 관상을 통하여 천사들처럼 되었다.
 
‘철학적 상승’이란 말에는 사실상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다. 마크리나의 마지막 기도와 최후 탄원의 전례적 문맥은 전체 여정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표현한다.  즉 육체의 욕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경외심으로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 그리고 하느님 앞에 흠 없이 되기 위하여 자기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었다(24). 철학적 이상의 추구는 그리스도를 향한 신비적 상승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2) 수도승적 이상의 구체적 특성
 
이것들은 마크리나의 이상적 모습에서 나오는 주요 특성들이고 그의 여정, 즉 고차원적 실재들에 대한 관상을 위해 감각으로부터의 점진적 자유의 주요 단계들이다. 이 일반적 특성들은 마크리나와 그의 가족 구성원 중 몇몇(나우크라시우스, 바실리우스, 엠멜리아)이 채택한 삶의 양식 안에서 그리고 그들이 살고자 했던 수도승적 가치들 안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순결하고 흠 없는 삶의 양식’(2)인 동정성의 동기들이 많이 언급된다.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약혼자가 죽자 여전히 젊었던 마크리나는 동정을 지키려는 결심이 확고했다(5). 동정성의 선택은 그녀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마크리나의 결심의 일부로 나타났다. 그 결심은 세상에서 멀리 물러나 영혼의 통합과 관상을 가능케 하는 고독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다. 또 다른 특성은 가난이다. 이것은 정결한 삶에 방해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이다(6). 이것은 보다 큰 자유의 한 요소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나우크라시우스와 바실리우스의 경우에서 이것을 볼 수 있는데, 곧 당시 사회에서 부유한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포기이다. 그것은 또한 호화로운 생활 관습을 끊고 시종들에게 봉사받기를 포기하는 것(7)이기도 하다. 동시에 가난한 이들과 동등해지려는 자발적 의지도 포함된다. 이런 평등성은 손노동의 채택과 노예들과의 공동생활 선택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7). 특히 손노동은 가난한 삶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에 선택한다. 마크리나는 사람들의 봉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노동해서 생계를 유지했다(20). 동시에 손노동은 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마련하게 해준다.  그레고리우스는 나우크라시우스(8)와 페트루스(12) 그리고 마크리나(20)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이 노동은 동정성과 고독 혹은 가난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관상을 위한 자유를 얻는데 있다. 마크리나와 그 동료들의 주된 일과 포기의 목적은 신적 실재들에 대한 묵상, 끊임없는 기도, 부단한 하느님 찬양(11)이었다. 마크리나의 생애 최후의 날들은 관상과 기도를 위한 이 열망에 어긋나지 않았다.
 
3) 영적 스승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그레고리우스는 마크리나를 완덕의 길을 가르치는 지도자와 조언자로 제시하고 있다. 장 다니엘루 신부(P. J. Daniélou)는 자기 논문의 결론에서 그레고리우스에게 있어 관상과 사도직을 결합하는 깊은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크리나는 우리에게 자기 말과 행동을 통해 어머니, 바실리우스, 그레고리우스, 페트루스 그리고 동정녀와 과부들의 교육자로 제시된다. 이것이 곧 철학적 삶의 풍부함이다. 즉 고대의 현자처럼 그리스도교 성인은 증거자이다. 그레고리우스는 그녀가 여전히 증거하기를 바라고 있다(1).
 

본 문
 
서문
 
1. 이 글은 형식상 서간문입니다. 두서(頭書)만 보더라도 누구나 이것이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량으로는 편지가 아니라 한 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당신이 요청하신 내용을 편지에 담아 보내드리기에는 그 주제가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당신께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우리가 가졌던 만남을 잊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는 제가 서약한 바에 따라 육(肉)안에 오신 주님 강생의 자취를 바로 그 현장에서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무렵이었고, 안티오키아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 마침 저는 당신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화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적인 당신께서(ton Intelligence)4) 많은 이야기 거리를 꺼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에는 대화가 끊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대화중에 유명한 한 인물을 생각해냈고 곧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성을 초월해 고양된 사람을 그의 성(性)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한 여인에 대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 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는 아무 것도 의존하지 않고 대신 우리가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만을 그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중에 언급했던 그 동정녀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그와 관련된 놀라운 일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와 다른 형제들처럼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 어머니의 태에서 처음으로 발아한, 말하자면 부모님께서 앞으로 거두시게 될 열매들 중에서 맏물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의 훌륭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가 어떤 유익이 되리라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철학(philosophia)5)을 통해 인간적 덕행의 절정에까지 다다른 이 여인이 침묵 속에 묻힘으로써, 오는 시대에 그러한 존재가 잊혀져버려 아무에게도 그가 알려지지 않고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어떠한 유익도 주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 순명하여 그의 이야기를 단순하고 꾸밈없이 가능한 한 간결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출생
 
2. 그 여인은 마크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동정녀였습니다. 한편 이전에 우리 집안에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또 다른 마크리나가 계셨는데, 그는 바로 우리 친조모였고 박해시대에 여러 번에 걸쳐 힘껏 싸워서 그리스도를 증거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분의 이름을 따서 아이에게 마크리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공식적인 이름으로, 지인들은 그를 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생 전에 있었던 한 발현 덕분에 그에게는 비밀스레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그러한 덕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특히 순결하고 흠 잡을 데 없이 살기를 원해서 기꺼이 결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를 모두 여읜데다, 그 때는 외모의 우아함이 한창 물이 올라있었고, 미모에 대한 명성도 자자해서 많은 이가 그와 혼인하고자 하였습니다. 게다가 미모 때문에 연정으로 불타오른 사람들이 그를 납치하려고 벼렸기에 그는 자진해서 어떤 사람과 약혼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기 의사에 반해서 어떤 난폭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품 있는 행실로 명성이 자자했고 평판이 높았던 한 남자를 택해서 자기 삶의 보호자로 삼았습니다. 그 후 그는 첫 아기를 낳게 되었고, 우리가 이야기한 그 여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거의 다 해산하여 산고가 끝나갈 무렵에 그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마치 아직 태중에 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어느 인간보다 더 위엄 있는 용모와 몸가짐을 한 인물이 나타나서 그의 태중에 있던 아이를 ‘테클라’라고 불렀습니다. ‘테클라’는 동정녀 중에서도 그 생애가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세 차례 반복된 후에 발현은 그쳤습니다. 그는 순산을 하였고 잠에서 깨어나 꿈에서 본 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비밀스레 불렸던 그녀의 이름에 대한 내력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발현은 단순히 아이의 이름을 짓는데 있어 지침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 미리 일러주려고 했고, 아이가 그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살았던 그런 삶을 택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 것 같습니다.
 
 
교육
 
3. 아이는 자랐습니다. 아이에게는 유모가 있었지만, 어머니가 더 자주 아이를 자기 품에 안아 젖을 물렸습니다. 유년기가 지났을 때 아이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을 쉽게 배워 익혔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배우는데 두각을 나타내자 그의 부모는 아이를 교육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는 아이들의 초기 교육이 대부분 시 작품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세속적 교육관행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시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주제를 이루는 여성들의 비극적 정열, 희극의 외설 이나 트로이의 불행 원인들, 이를테면 여인들의 부적절한 이야기로 얼룩진 시들을 통해 온순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그는 정말로 수치스럽고 부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성서에 담긴 모든 내용을 아이의 교과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어린아이가 오히려 더 쉽게 성서에 다가갈 수 있다고 여겼고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서, 그 중에서도 윤리적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내용을 선호하였습니다. 그는 시편을 어느 한 구절도 빼놓지 않고 모두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 중 정해진 때에 시편의 각 구절을 모두 암송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가사 일을 시작할 때나 끝낼 때, 휴식을 취할 때나 식탁에서 물러날 때, 잠자리에 들 때나 밤중에 기도하러 일어날 때,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그는 한순간도 곁에서 떠나지 않는 변함없는 친구처럼 시편과 함께 했습니다.
 
 
정혼
 
4. 아이는 커 가면서 이러 저러한 일들을 하였고 특히 양털 가공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해냈습니다. 그러는 중에 청춘의 꽃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열두 살이 되었습니다. 소녀의 미모는 어떻게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감추려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통틀어도 그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비할 만큼 경이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화가의 손으로도 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일을 솜씨 좋게 해내고 천체 모습을 모사하여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과업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데까지 이른 재간으로도 그의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의 부모에게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주의 깊고 바른 분별력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는 친척들 중에서 좋은 가문이 출신으로 행실이 바르기로 이름난 한 젊은이를 자기 딸의 배필로 점찍었는데 그 사람은 이제 막 학업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의 혼기가 찼을 때 아버지는 바로 그 젊은이를 배필로 정해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젊은이에게는 마음을 부풀게 하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변론을 하여 자신의 언변을 드러내고, 연설가로서의 자기 명성을 소녀의 아버지에게 결혼선물로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질투가 이런 밝은 희망을 앗아갔고 죽기에는 아까운 나이였던 그를 삶에서 낚아 채 가버렸습니다.
 
 
동정의 결심
 
5. 소녀는 아버지의 결정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위해 정해진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렸을 때, 그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했던 정혼으로 자신은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에게 예정되어 있던 운명이 그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처럼 그때부터는 동정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은 나이에 비해 너무나 확고해서 사람들의 짐작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미모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그와 결혼하기를 열망했기 때문에 부모는 그에게 자주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뜻대로 정혼했으므로 그것으로 족하고 또 다시 다른 사람과의 혼담을 꺼내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뿐더러 합법적이지도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출생과 죽음이 단 한 번 있는 것처럼 결혼도 단 한 번 있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부모가 자신의 배필로 정해준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확고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 살았던 그 사람이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여정 중에 있으며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여정 중에 있는 자기 배우자를 배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크리나와 어머니
 
이러한 논거로 마크리나는 자기를 설득하려는 모든 사람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이런 고귀한 결심을 지키는데 있어 유일한 보호막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늘 어머니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자기 태중에 품고 있었지만 마크리나는 늘 꼭 품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계속해서 태중에 그를 배고 있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있어서 딸과 함께 하는 삶이 짐스러운 것이거나 무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딸의 주의 깊은 보살핌을 받는 것은 그에게 있어 많은 하인의 시중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녀는 서로 간에 유익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영혼을 돌보고 딸은 어머니의 육신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딸은 그에게 요구되는 온갖 가사 일을 하면서도 특별히 어머니를 위한 식사를 손수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그에게 주업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에 전례 봉사를 도왔고 남은 시간엔 손수 일을 해서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살고자 했던 삶의 방식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어머니가 짊어져야 하는 모든 짐을 함께 나누어 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부양해야 하는 네 아들과 다섯 딸이 있었고, 재산이 세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까닭으로 세금을 세 수령에게 각각 납부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상태에서 그런 상황은 어머니에게 온갖 괴로움을 가중시켰습니다. 마크리나는 이 모든 일에 있어 어머니와 함께 걱정하고 그녀의 슬픔의 무게를 덜어드리면서 어머니와 고생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눈은 끊임없이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장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삶의 모범이라는 경탄할 만한 방법으로 어머니에게 같은 이상 ─ 저는 이것을 철학의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에 이르는 방향을 제시하였고 점차로 어머니를 영적이고 순수한 삶으로 인도해나갔습니다.
 
 
바실리우스
 
6. 어머니가 각자의 처지와 의향에 따라 마크리나의 자매들에게 적합한 혼인을 성사시켰을 때, 마크리나의 동생 대(大) 바실리우스가 오랫동안 수사학을 연마하고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마크리나는 그가 자신의 언변에 대한 자부심으로 지나치게 우쭐거리고 모든 고관을 업신여기며 귀족과 지방관들에게 거드름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는 바실리우스를 그렇게도 빨리 철학의 이상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실리우스는 세상의 명예를 마다하고 자신의 언변이 가져다준 영예를 업신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가난과 덕행으로 나아가는데어떤 장애도 없는 삶의 채비를 갖추어, 손노동을 하면서 고되게 살아가는 삶으로 도망자처럼 달아나버렸습니다. 바실리우스의 삶과 행실로 인해서 그의 이름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곳에 알려졌고 그의 명성은 덕행으로 유명했던 모든 이를 능가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긴 설명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다시금 마크리나에게로 돌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수도원처럼 변화된 가정
 
7. 마크리나는 세속적인 삶의 그럴듯한 구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린 후에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귀부인과 같은 행색을 버리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하인들의 수발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설득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주변을 바라보고 그의 곁에 살고 있던 동정녀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게 함으로써 노예와 하녀들을 자기 자매 또는 자신과 동등한 사람들로 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여담으로 이 일에 관한 짧은 다른 일화들을 덧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이야기하느라 이 동정녀의 고매한 인품이 더 잘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일화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우크라시우스(Naucratius)의 삶
 
8. 네 남동생들 가운데 대(大) 바실리우스 다음으로 태어난 둘째는 나우크라시우스였습니다.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아름다운 용모, 힘과 순발력 그리고 일처리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가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대중 앞에서 한 연설을 통해 자신이 공부했던 것을 펼쳐보였을 때 극장 안에 있던 모든 청중은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느님의 섭리에 이끌려 지기 수중에 있던 모든 것을 천히 여겼고 억누를 수 없는 갈망으로 인해 고독하고 가난한 삶에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하인 중 하나인 크리사피우스는 주인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한결같은 애정으로 그를 따랐습니다. 나우크라시우스는 이리스 근처의 외딴 곳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이리스는 폰투스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인데, 이 강은 아르메니아에서 발원하여 우리 고장을 가로질러 흑해로 흘러듭니다. 그는 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데서 무성한 숲으로 덮이고, 산을 둘러 우뚝 솟은 절벽에 있는 한 동굴 속에 숨겨진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도시의 소란을 멀리하고, 힘을 쏟아 부어야 했던 제국의 병역과 법정의 변론으로부터 떨어져 살았습니다. 이렇게 삶의 주변에서 사람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몸소 병들고 가진 것 없는 노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자기가 원한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일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모든 사냥 기술에 관해 능숙했던 그는 사냥으로 노인들에게 먹을 양식을 마련해주는 한편 사냥의 고단함으로 자신의 젊은 혈기를 다스려나갔습니다. 한편 그는 어머니가 어떤 것을 자기에게 명할 때마다 기꺼이 순명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이중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다잡아갔던 것입니다. 자신의 젊은 혈기를 다스리는 고된 노동과 어머니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그는 신적 계명을 지키면서 복되게 하느님께로 나아갔습니다.
 
 
나우크라시우스의 죽음
 
9. 5년 동안 그는 이렇게 철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이런 삶의 방식이 어머니에게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는 절제로써 삶을 꾸려가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데 전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감당하기 버겁고 비극적인 시련이 어머니를 덮쳤고 우리 가족 모두를 불행과 비탄 속에 빠뜨렸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적들의 흉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나우크라시우스가 어느 날 별안간 세상을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병치레가 잦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런 불행을 전혀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아야하는 납득할 수 있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자기가 보살피고 있던 노인들의 양식을 마련하러 사냥을 나갔던 나우크라시우스는 그의 동료인 크리사피우스와 함께 시체가 되어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멀리 계셨는데, 그 곳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걸어서 사흘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머니에게 가서 그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덕에 있어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머니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모정은 강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일순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의 감각은 마비되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통으로 이성을 잃은 어머니는 예기치 않은 공격을 받은 명문가 출신의 운동선수처럼 이 비극적인 소식이 가한 충격으로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시련 앞에서 마크리나와 어머니의 태도
 
10. 이런 상황에서 위대한 마크리나의 덕은 빛을 발했습니다. 고통에 직면하여 흔들림 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을 곧추 세우고, 어머니의 약함을 받치는 버팀목이 되어 그를 슬픔의 심연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마크리나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태도는 어머니의 마음에 용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고통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고통 앞에서도 울부짖거나 겉옷을 찢거나 하지 않았고, 불행에 대해 탄식하거나 구슬프게 곡소리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여인네들의 저급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침묵을 통하여 모정의 충동을 잠재우고 스스로의 숙고와 딸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제시했던 권고를 통해 그것을 몰아내버렸습니다. 이렇게 마크리나라는 동정녀의 한없이 위대한 영혼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역시 인간적인 정으로 어머니처럼 고통스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그렇게 앗아 가버린 것은 바로 자기 형제, 더구나 그가 가장 사랑하는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리나는 숙고를 통하여 육정을 극복하고 어머니 역시 모정을 극복하여 고통을 이겨내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자기 행실로써 모범을 보이며 인내와 용기를 갖도록 어머니를 이끌었습니다. 부단히 덕에 나아갔던 그의 삶은 어머니에게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슬픔에 빠져있기보다는 자기가 받은 축복을 향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니사에서의 수도승생활
 
11. 어머니는 자녀들의 양육에 대한 책임과 교육과 혼인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자 사람들을 세속적인 삶으로 끌어들이는 주된 빌미가 되는 재산을 자녀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한편 제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크리나라는 동정녀가 살아가는 모습은 어머니를 이런 종류의 철학적이고 영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마크리나는 어머니가 익숙해져 있던 호사스런 것들을 버리게 하여 자신과 같은 정도의 겸손을 지니도록 어머니를 이끌어 동정녀들의 무리(공동체)와 같은 수준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모든 계급적인 특권을 거부하고 그들과 동등한 처지의 사람으로서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자고, 같은 생계 수단으로 그네들과 같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크리나와 그의 어머니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철학이 너무나도 고결하고 밤낮의 행실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하도 거룩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죽음으로 육신에서 자유로워진 영혼이 삶의 근심에서도 해방되는 것처럼 그들의 삶은 그런 근심들로부터 해방되고, 세상의 모든 헛된 것에서 멀어져 천사의 삶을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분노, 시기, 증오, 거만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명예나 영화, 야망이나 자부심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모든 헛된 것에 대한 욕망을 물리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쾌락이란 바로 금욕이었고, 영화란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것이었습니다. 부유함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것은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자신의 몸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또 노동이라는 것은, 이런 삶에서 사람들이 힘을 기울여 해야 하는 어떤 일 ─ 그것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적 실재에 대한 묵상과 계속되는 기도, 모든 시간에 걸쳐 고르게 배분되어 밤낮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묵상과 기도와 찬송, 이러한 것들은 그들에게 노동인 동시에 휴식이었습니다. 인간적 속성과 영적 속성의 경계선에 놓인 이러한 삶의 모습을 인간의 말로 어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격정으로부터 해방된 그들의 본성은 인간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육체 안에 한정되어 감각기관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천사와 영적 실재의 본성에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차이가 극히 적은 것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면서도 영적 존재를 닮아 육체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은 육체의 부담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고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높은 곳에서 천상의 지배자들과 함께 거닐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러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덕행은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자라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철학은 그것이 드러내는 선이 커져감에 따라 부단히 보다 큰 순수함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세바스테(Sebaste)의 페투르스
 
12. 마크리나에게는 또 다른 형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마크리나가 삶의 숭고한 이상을 실현해 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페투르스였습니다. 그의 탄생으로 우리 어머니의 모든 산고는 끝이 났습니다. 그는 우리 부모님의 막내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던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에 그는 아들이라는 명칭과 고아라는 명칭을 동시에 받게 되었습니다. 페투르스가 태어나자마자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서 이야기해온 그의 큰누님이 유모에게서 몸소 그를 받아 돌보았습니다. 마크리나는 아주 높은 수준의 소양에 이르도록 페투르스를 가르쳤고 어렸을 적부터 거룩한 학문을 연마하도록 그를 훈련시켜, 한가함으로 인해 헛된 것들에 정신을 팔지 않도록 했습니다. 마크리나는 그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버지, 스승, 교사, 어머니, 온갖 좋은 것들에 대한 조언자였던 마크리나로 인해 페투르스는 소년기가 채 지나기 전, 아직 아동기가 한창인 어린아이 때부터 철학의 숭고한 이상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타고난 재능 덕분으로 온갖 수작업을 솜씨 좋게 해냈습니다. 자신을 꼼꼼히 가르치는 스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습득할 수 있는 일들을 그는 훌륭히 해냈습니다. 세속적인 학문을 배워 익히는 것을 하찮게 여긴 그에게는 온갖 좋은 지식을 적절하게 가르쳐 줄 누님이라는 선물이 태어나면서 주어졌습니다. 페투르스는 자기 누님을 모든 선행에 있어 모범으로 삼고 언제나 누님의 행실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덕행에 있어서 진보하였고 덕의 뛰어남으로 말하자면 그는 대(大) 바실리우스에 견주더라도 손색이 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천사의 삶을 사는 누님과 어머니에게 삶의 조력자가 되었고,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그들의 선행이 널리 알려져 도처에서 많은 사람이 그들이 은거하고 있던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페투르스의 수고 덕분에 그들에게 그처럼 많은 양식을 댈 수 있었고 쇄도하는 방문객들로 인하여 사막이 마치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13. 행복한 노년을 맞은 어머니는 얼마 후 하느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두 자녀의 팔에 안겨 세상을 하직한 것입니다. 그가 자녀들에게 남긴 축복의 말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있지 아니한 자녀들도 다정하게 떠올리면서 자녀들 중 그 누구도 축복에서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의탁한 자녀는 바로 그녀의 임종 때 함께 한 자녀였습니다. 두 자녀는 침대 한쪽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어머니는 각각의 손을 잡고 하느님께 이러한 마지막 말씀을 올렸습니다.
 
“주님, 당신께 제 고통의 열매 중에서 맏이와 열째를 바칩니다. 여기 맏물인 저의 첫째입니다. 그리고 열째인 저의 막내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법(계명)에 따라 당신께 바치는 봉헌물이고 당신의 것입니다. 바라건대 당신께서 여기 있는 저의 맏이와 막내를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어머니는 분명하게 자기 딸과 아들을 가리켰습니다. 축복을 모두 마치고 나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자신을 아버지의 무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분부대로 어머니를 묻고 나서 그들은 한층 고양되어 철학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삶을 거슬러 부단히 싸우면서6)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후에 이룬 진보는 그들이 초기에 보여준 덕행을 능가했습니다.
 
 
페투르스의 사제수품과 바실리우스의 죽음
 
14. 이 무렵 가장 위대한 성인들 중 한 분이었던 바실리우스는 체사레아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전례를 통하여 몸소 페투르스를 축성하여 그를 사제직에 올렸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더 경건하고 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페투르스가 사제직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철학에 더욱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8년 후, 온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바실리우스는 사람들을 떠나 하느님 품으로 갔습니다. 바실리우스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고향과 온 세상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마크리나가 이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엄청난 상실감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진리의 적들에 의해 저질러진 그 비극에 어떻게 그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황금은 몇몇 도가니를 거쳐야 순수하게 정련된다고들 합니다. 첫 번째 도가니에서 제거되지 못한 불순물들은 두 번째 도가니에서 걸러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맨 마지막 도가니에서 금속에 있는 모든 불순물이 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순금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그것이 모든 도가니를 거쳤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모든 도가니를 거쳤다면 더 이상 걸러낼 불순물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크리나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영혼이 굳건하고 순수하게 정련되기 위하여 그의 고결한 마음은 계속되는 불행의 공격으로 야기된 온갖 시련의 도가니를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 시련이란 무엇보다도 나우크라시우스 죽음과 그 뒤를 이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 집안 모두의 자랑이었던 바실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는 불행의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았고 결코 굴하지 않는 운동선수처럼 의연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마크리나를 찾아감: 예언적인 꿈
 
15. 그 슬픔을 겪은 지 아홉 달 남짓 되었을 무렵 안티오키아에서 주교회의가 열렸는데 당신과 저는 여기에 참석하였습니다. 한해가 다 가기 전, 우리가 서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저 그레고리우스는 마크리나를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박해로 인해 그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서나 그것을 감내해야했고, 이단자의 괴수들에게 쫓겨나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박해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8년 아니면 그보다 조금 모자란 듯 보이는 기간이 제게는 아주 길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를 찾아가는 여정의 대부분을 여행하고 나서 하루 길을 남겨두었을 때 저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환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손에 순교자의 유물을 들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태양빛을 직접 반사하도록 놓여 있는 깨끗이 닦인 거울의 표면에서 나오는 것 같은 빛이 유물로부터 쏟아졌고 제 눈은 그 빛나는 섬광 때문에 멀어버렸습니다. 그 밤에 그러한 환시가 세 번이나 제게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 꿈에 감춰진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환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는 동안 저는 제 영혼이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크리나가 천사의 삶과 같은 천상적 생활을 하고 있던 은수처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먼저 저는 시종들 중 한명에게 동생 페투르스가 집에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동생이 사흘 전에 저를 마중하러 집을 떠났다는 그의 말을 듣고 저는 동생과 제가 길이 엇갈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에 저는 위대한 마크리나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마크리나가 병중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황급히 남은 길을 달려갔습니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에서 일어나 저를 심히 동요시켰던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의 안니사 도착
 
16. 제가 거기에 이르렀을 때 저의 도착 소식이 공동체에 알려졌고, 모든 사람이 저를 마중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은 방문객을 존경심으로 맞이하기 위한 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동정녀 무리는 성당 옆면에 있는 그들의 자리에 정렬하여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도와 강복이 끝날 무렵, 이들은 강복을 받기 위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기울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두 각자의 거처로 물러가 그들 중 누구도 우리와 함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사모(師母)는 함께 나오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안내하여 위대한 마크리나가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문이 열리고 저는 그 거룩한 처소로 들어갔습니다. 마크리나는 병으로 끔찍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침대나 요 위가 아니라 흙바닥에 놓인 판자에 깔린 거친 부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판자 하나가 그의 머리에 괴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목을 비스듬히 받치고 편하게 목을 가눌 수 있도록 하는 이를테면 베게였던 것입니다.
 
 
첫 번째 만남
 
17. 마크리나는 문 가까이에 있던 저를 보고 팔꿈치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제게로 뛰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미 열 때문에 체력이 소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손으로 땅을 짚고 침상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면서 저를 맞으려 애썼습니다. 저는 뛰어가 엎드린 그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워 전과 같이 자리에 누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손을 올리고 기도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다시금 은총을 풍성히 내려주셨습니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원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당신 종으로 하여금 이 여종을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는 제가 애통해 할까봐 신음소리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또 가쁜 숨을 감추려 애면글면했습니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먼저 즐겁게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우리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대 바실리우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였고 제 마음은 슬픔으로 미어지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의 슬픔에도 흔들림 없이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고차원의 철학 이야기로 이끌어 다양한 주제로 전개시켜 갔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면서, 시련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섭리를 보여 주었으며, 자기 장래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감도를 받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말을 듣는 저의 영혼은 고양되어 인간의 본성을 벗어버리고 그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천상의 성소 안에 자리를 잡은 듯 느껴졌습니다.
 
 
욥과 같은 마크리나의 모습
 
18. 우리는 욥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온 몸을 덮고 있던 상처가 곪아 터져서 고름이 몸 전체에 흘러내린 고통을 겪은 욥이 깊은 성찰을 통하여 고통이 자신의 분별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였고, 육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욥은 활기가 넘쳤고 보다 거룩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마크리나에게서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열은 그의 모든 힘을 소진시켜버렸고 그를 죽음의 목전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는 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몸의 원기를 생생하게 회복하였고, 그의 영혼이 자유로이 천상적 실재를 관상하는데 육신의 쇠약함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가 육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또 인간이 어떻게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고, 죽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새 생명으로 우리를 이끄는 구원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마크리나는 참으로 천상에로 고양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무한정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다면 저는 그가 한 모든 말을 차례로 풀어놓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 마크리나는 성령의 힘에 감도된 듯 보였습니다. 그의 말은 모든 점에 있어 명료하고 논리정연 했을 뿐만 아니라 난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탈을 흘러내려가듯 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휴식을 취함
 
19. 마크리나는 대화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여독으로 피곤하실 터이니, 지금은 당신이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와 만나 그의 거룩한 말을 듣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참된 휴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바랬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전적으로 순명하기 위해 그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처 정원에서 저를 위해 사람들이 마련한 곳을 발견하고 나무 덩굴 밑 그늘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다가올 슬픈 일에 대한 예감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서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목격한 것이 일전에 꿈에 나타난 환시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제가 참으로 보았던 것은 죄에서는 죽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현존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빛나는 거룩한 순교자의 유해였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이러한 생각을 전에 제가 꿈 이야기를 해준 사람 중 하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다가올 슬픈 일을 예견하면서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마 크리나는 우리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을 전해왔는데, 우리를 격려하여 믿음을 잃지 않게 하고 그에 대해서 보다 나은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마크리나가 자신의 상태가 좋아졌음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어떤 운동선수가 상대편을 추월하고 경기장의 결승선에 거의 이르러 심판관석에 가까워졌을 때 승리자의 월계관을 보고 마치 그가 이미 그것을 얻었고, 그의 승리가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선포된 것처럼 기뻐하는 것처럼, 마크리나도 그러한 느낌으로 활기에 넘쳐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은 이미 뽑힌 이들을 위해 천상에 마련된 상급을 향해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에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우신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라는 사도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그에 대해서 더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별에 안심이 되어 우리를 위해 차려진 음식들을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는 우리에게 세심하게 마음을 써서 다양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
 
20. 마크리나는 우리가 홀로 지내며 시간을 허비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곧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젊었을 적부터 회상하면서 우리에게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내력을 진술하듯이 모든 일을 차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우리 부모님의 삶에 관한 추억과 제가 태어나기 전과 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유했던 부모님의 삶이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높은 평판과 칭송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자애에 경의를 표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친 조부모님들께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여 재산을 몰수당하였습니다. 또 외조부께서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들의 재산은 나뉘어져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덕분에 집안의 재산은 불어나 당시 누구도 그보다 재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재산이 다시 자녀들의 수에 따라 아홉 등분으로 나누어지고 난 후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계속 불어나 각 자녀가 받은 몫이 분배되기 전의 부모 재산보다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마크리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분배된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차지하려하지 않고 신적 계명에 따라 그것을 사제의 손에 맡겼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마크리나는 삶에서 계명을 실천하였고 그에 따라 자신의 손을 놀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부나 봉사를 안락한 삶의 방편으로 삼아 그것에 기댄 적도 없었습니다.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을 그냥 되돌려 보내지 않았으나 정작 자신은 사람들의 자선을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크리나가 한 선행의 작은 씨앗을 당신 은총으로 자라게 하시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처한 상황에 대한 마크리나의 의견
 
21. 저는 마크리나에게 제가 겪고 있었던 어려움들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먼저 믿음 때문에 발렌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추방당한 것과 이어서 교회안의 혼란 때문에 논쟁과 싸움에 휘말리게 된 것을 이야기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영혼의 배은망덕을 구제하지 않으려 합니까? 당신은 우리 부모님의 처지와 자신의 입장을 비교해보지도 않으려 합니까? 실상 이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가 귀족 가문 출신으로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자랑 거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 당시 높은 학식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명성이 주(州)의 법정에까지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수사학에 있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망이 폰투스 밖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고장에서의 명성에 만족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러 도시와 민족과 주에 이르기까지 명망이 높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당신을 대표로 파견하고 또 다른 교회들은 당신께 도움을 청하고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당신을 부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그처럼 큰 은총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우리 부모님의 기도가 당신을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당신의 생각대로 헤아려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거나 혹은 있어도 극히 미미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마지막 날에 마크리나가 삶을 정리함
 
22. 마크리나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저는 하루가 길어져 우리가 계속 그의 감미로운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성가대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저녁 기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는 저를 성당으로 보낸 후에 다시 기도 안에서 하느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그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그를 보았을 때 저는 그날이 마크리나가 육신 안에서 지내는 삶의 마지막 날이 될 것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미열 때문에 그에게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의 약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비탄에 젖게 만드는 죽음의 예감을 잠시나마 잊게 하려고 다시 한 번 아름다운 말로 우리 마음의 고통을 없애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칠게 헐떡이는 숨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음성을 들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고 우리 집안 모두의 자랑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하는 저의 마음은 슬픔으로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저의 이런 인간적인 심정에 대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은 고양되어 그가 일반적인 자연 법칙을 초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마크리나가 어떤 신묘한 체험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마지막 숨에 이르기까지 숭고한 정신으로 그가 선택했던 이 삶에 대해 처음부터 깊이 묵상할 뿐이었는데, 이것이 저에게는 그가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습니다. 마크리나는 마치 육신 안에서의 삶과 관계가 없어 육신에 묶여있거나 육신으로 인해 격정에 휘말리지도 않는, 그래서 그에게는 마음의 평정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한 천사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저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의 정배에 대한 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명백히 드러내 보였습니다. 마크리나는 자기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에다 그 정배를 감추어 두고 그를 살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사랑하는 정배께로 향하도록 재촉하는 갈망을 털어놓고, 육신의 사슬이 끊어지는 그 때에 한시바삐 그에게로 달려가 그와 함께 있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여태까지도 자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삶의 쾌락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배를 향해서 달려왔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
 
23. 날이 다 저물어 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에도 그의 열정은 사그라질 줄 몰랐고,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거세게 그를 자신의 정배께로 재촉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정배의 아름다움을 더 강렬하게 주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는 곁에 있던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직 그분께만 시선을 고정시켜 그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침상을 돌려 동쪽을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그분께로 손을 들어 간청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그의 기도를 옮겨 적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느님께 이르렀고 하느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크리나의 기도
 
24. “주님, 저희에게서 죽음의 두려움을 거두어 가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당신은 저희를 위해 이승살이의 마지막이 참된 삶의 시작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저희 육신을 잠시 동안 잠들게 하시고 마지막 나팔 소리에 다시 깨어나게 하십니다.
당신은 손수 지으신 우리 인간을 땅에다 두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께서는 이 땅에 우리 인간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고 그 때 당신은 우리 안의 죽음과 추함을 불멸과 아름다움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은 몸이 되시고 죄인이 되시어 우리를 저주와 죄에서 구해내셨습니다.
당신은 용들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 입에서 우리를 건져내셨고 불순종의 구렁에서 우리를 끌어 올리셨습니다.
당신은 지옥문을 부수시고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를 무력하게 만드신 후 우리에게 부활의 길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문장(紋章)으로 거룩한 십자가의 표지를 주셨고 이로써 적들을 멸하시고 우리 목숨을 지켜주셨나이다.
영원하신 하느님,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저는 당신을 향하여 비상하였고, 제 영혼이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한 것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제 몸과 영혼을 당신께 바쳤습니다.
제 곁에 빛의 천사를 보내주시고 그가 손수 저를 새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시어 거기에서 성조들의 품에 안겨 안식의 샘을 찾게 하소서.
당신은 번쩍이는 불 칼을 부수셨고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당신 자비에 의탁하였던 사람을 낙원에 들게 하셨습니다.
당신 나라에서 저를 기억하여주십시오. 저 역시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당신을 경외하여 제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당신의 심판을 두려워한 저입니다.
어떤 심연도 당신께서 저를 택하시지 못하도록 저와 당신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으며, 어떠한 시새움도 당신을 향한 제 길에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눈앞에서 저의 죄는 낱낱이 드러날 것입니다. 인간 본성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저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시어 생기를 되찾게 하시고, 제가 육신을 벗어버린 후에 제 영혼이 티나 주름 없는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소서. 또한 제 영혼이 당신 면전의 분향처럼 나무랄 데 없고 순결한 상태로 당신 손에 받아들여지게 하소서.”
 
 
마크리나의 죽음7)
 
25. 이 말을 마치자 마크리나는 자기 눈과 입술과 가슴에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는 열 때문에 입이 점점 타들어가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도 점차 사그라져서 우리는 그의 입술과 손놀림을 보고 그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누군가 등불을 가져왔습니다. 마크리나는 눈을 떠 빛을 응시했는데, 그 빛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내적 열망에 따라 입술을 움직여가며, 마음으로 그리고 손짓으로 자신의 원을 채울 뿐이었습니다. 성호를 긋기 위해 손을 얼굴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감사기도가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삶과 기도를 동시에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숨도 쉬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크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제게 했던 청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제가 손수 자신의 눈을 감겨주고 시신을 관례대로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기를 원했었습니다. 그의 청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저는 고통으로 마비된 제 손을 그의 거룩한 얼굴로 가져갔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감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잠이 든 것처럼 그의 눈꺼풀이 단아하게 눈을 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입은 꾹 다물어져 있었고, 손은 단정하게 포개져 가슴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이미 바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정녀들의 슬픔
 
26. 제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들과 제 주위에서 들려오는 동정녀들의 슬픈 탄식으로 제 마음은 곱절로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침묵 속에서 슬픔을 삭이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마크리나로부터 혹시라도 꾸지람을 듣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양으로, 그들은 그에 대한 경외심으로 괴로움을 가슴에 담아두고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오열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울음소리라도 내어 분부 받은 것을 어기고 자신들의 스승을 슬프게 할까봐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불이 마음을 태우고 있어 침묵으로도 고통은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더 이상은 억누를 수 없는 애끓은 울음이 터져 나왔고 제 정신도 걷잡을 수 없이 되었습니다. 넘쳐흐르는 비탄의 격류에 휩쓸린 것처럼 제 정신은 고통에 사로잡혀,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슬픔으로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정녀들이 탄식하는 까닭은 합당하고 사리에 맞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적 애착이나 인간적 교분 상실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엄습한 불행이 주는 괴로움 때문에 우는 것과도 전연 달랐습니다. 그들은 마크리나의 죽음으로 자신들이 하느님 안에 있는 희망과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울부짖고 신음하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꺼져버렸습니다. 우리 눈의 빛은.
치워져버렸습니다. 우리를 이끌던 등불은.
이제 없어져버렸습니다. 우리 삶의 안전은.
치워져버렸습니다. 불멸의 보증은.
풀려버렸습니다. 우리 일치의 끈은.
이제 무너져버렸습니다. 심약한 이들의 보루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약자들의 위로는.
당신과 함께 했을 때, 밤은 우리에게 순결한 당신 삶의 빛으로 낮과 같이 빛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낮조차 우리에게는 암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마크리나를 어머니 혹은 양어머니라고 부르면서 다른 이들보다 더한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기근이 들었을 때 길에서 해매고 있던 이들로서 마크리나가 거두어 먹이고 지도해 순결하고 흠 없는 삶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들을 진정시킴
 
27. 저는 그들이 내던져져 있던 슬픔의 심연으로부터 제 자신을 다시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그가 곡소리로 주변이 어수선해진 것을 나무라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동정녀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를 보십시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점잖게 처신하라고 가르친 그의 유훈을 기억하십시오. 이 신적인 영혼은 몸소 여러분에게 눈물로 기도할 것을 명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그 때 뿐 이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비탄의 신음소리를 내는 대신 모두 한목소리로 시편을 노래해야합니다.” 저는 곡소리가 사그라지도록 더 큰 소리로 그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저는 그들에게 근처에 잠시 물러나 있도록 명했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를 생전에 돌보았던 몇몇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있게 하였습니다.
 
 
베티아나(Vetiana)와의 대화
 
28. 그들 중에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는 지체 높은 가문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부와 가문, 미모와 기품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고위층에 있던 한 남자와 결혼해서 잠시 동안 그와 함께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합은 그가 아직 젊었을 때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위대한 마크리나를 독신생활의 보호자와 지도자로 삼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정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게서 거룩한 삶을 배웠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티아나였고, 그의 부친 아락시우스(Araxius)는 원로원 의원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지금은 시신을 잘 단장해야할 때이므로 이 순결하고 흠 없는 육신에 깨끗한 수의를 갖추어 입히는데 어떠한 군소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성인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어떠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성인께서 합당하다고 여겼을 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바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흡족히 드는 것을 마크리나도 바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람파디아(Lampadia)와의 대화
 
29. 동정녀 성가대8)를 이끌던 여부제 중 하나인 람파티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마크리나가 자신의 장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 묻자 ─ 그리하여 그는 우리의 논의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성인께서는 순결한 삶, 그 자체로 자기를 단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분께서 살아계셨을 때의 예복이었고,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은 수의입니다. 몸을 치장하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그분께서는 생전에 아무것도 가지고 계시지 않았고, 현재의 상황에 대비해서 남겨두신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신을 단장하고 싶어도 지금 여기에는 그것을 위해 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창고 안을 살펴보면 장례를 위해 쓸 만한 것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창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분께서 가지셨던 전부를 보고 계십니다. 외투와 머리 수건과 발에 신겨진 닳은 신발, 이것들이 그가 누렸던 부와 재산 전부입니다. 당신께서 보고 계신 것 이외에 감추어둔 상자 안에 있거나 비밀의 방 안에 보관 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부를 쌓아둘 오직 한 곳, 즉 천상의 보물 창고만을 알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두시고 지상에는 어떠한 것도 남겨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제가 물었습니다.
 
“장례를 위해 제가 준비한 것을 내놓는 것이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제게 자신은 마크리나가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시다면, 두 가지 이유에서 당신의 그런 예우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사제직의 거룩함에 대해 늘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또 당신과의 혈연을 각별히 생각하셔서 동생이 보내온 것을 거절할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당신께 손수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청하셨던 것입니다.
 
 
마크리나의 십자가와 반지
 
30. 이런 결정을 하고 나자 일단은 거룩한 시신을 고운 아마포로 감싸야 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분담하였고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완수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시종 한 사람에게 명하여 의복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베티아나가 손수 성인의 머리를 단장하고 나서 자기 손을 마크리나의 목으로 가져가면서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성인께서 목걸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뒤에 있는 잠금 고리를 푼 다음, 손을 뻗어 제게 철로 된 십자가와 같은 금속으로 된 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개가 모두 가는 줄에 끼워져 항상 그의 가슴 위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베티아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 유품을 나누어 가집시다. 당신은 십자가를 간수하시오. 나는 반지를 물려받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십자가가 반지의 인장위에도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저는 반지를 물려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제게 다시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유품을 택하시는데 있어서도 현명하시군요. 반지의 테두리는 비어 있고 거기에 생명나무의 한 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반지의 겉에 새겨진 십자가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크리나의 기적
 
31. 바야흐로 이 순결한 육신에 수의를 입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의 분부에 따라 제가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와 함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부인이 제 곁에서 그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성인께서 하신 위대한 기적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묻히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마크리나의 가슴 한 부분을 드러내 보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거의 알아 볼 수 없는 희미한 흉터가 피부에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이 보이십니까? 그 상처는 작은 송곳에 긁힌 자국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등불을 제게 보여준 그 부위로 가까이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 곳에 그런 희미한 상처가 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놀랄만한 것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의 기념으로 그의 몸에 남겨진 것입니다. 어느 날 몹쓸 병이 그 부분에 도졌습니다. 종양을 째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 병이 심장 가까이 까지 퍼진다면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의술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주 그에게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자고 간청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마크리나는 자기 몸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을 병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손수 어머니의 시중을 든 후에 그는 성당으로 가서 치유의 하느님 발치에 엎드려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땅을 적셨는데, 그는 눈물로 젖은 흙을 자기 병의 치료제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낙담한 나머지 다시 한 번 의사에게 가자고 애원했을 때, 그는 어머니께 병이 도진 부위에 어머니의 손으로 성호를 긋는 것으로 충분히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가 병든 부위에 성호를 긋기 위해서 손을 그의 가슴 위로 가져갔고 그 때 그 성호는 효력을 나타내어 종양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그가 덧붙였습니다. “끔찍한 종기가 있던 곳에 작은 흉터가 생겨 끝가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흉터가 제 생각에 하느님의 신적인 개입에 대한 기념이 되었고 하느님께 대한 끊임없는 감사의 동기와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크리나의 염습
 
32. 우리가 모든 일을 마쳤을 때, 시신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여부제는 동정녀들이 마치 신부처럼 단장된 마크리나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다시 한 번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어두운 색의 외투 한 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성인의 거룩한 아름다움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수의의 화려함에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 옷을 입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의 견해를 수긍하여 외투를 마크리나에게 입혔습니다.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혔어도 그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번쩍이는 빛처럼 솟아나오는 것 같았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신적 권능이라는 은총이 그의 육신에 더해진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 이었습니다.
 
 
시신 둘레에서 시편을 노래함
 
33. 우리가 그러한 준비로 분주한 동안 주위에서 동정녀들이 애통해 하며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그렇게도 빨리 온 근방에 퍼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근처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수가 하도 많아서 현관은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밤새 마크리나의 주위에서 순교자들의 축일에 부르는 찬미가를 노래하였습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는 근처 온 지역에서 온 남녀의 무리는 흐느껴 우느라 시편을 노래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불행에 마음이 미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의 장례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치러낼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남녀로 구분하여 여자는 동정녀들의 대열에, 남자는 수도승들의 대열에 합류시켰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성가대의 노래에서처럼 통일되고 리듬감 있고 조화로우며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선율로 어울러져 균일하게 나올 수 있도록 조율하였습니다. 날이 조금 더 밝자 이 외딴 곳 주위는 밀려드는 사람들의 무리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사제와 함께 온 그곳의 주교 아락시우스는 장례 행렬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했습니다. 먼 길을 가야하는 우리가 갑작스럽게 이동할 경우 군중에 의해 길이 막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모든 사제에게 시신을 운구하도록 명했습니다.
 
 
장례 행렬
 
34. 이런 결정이 있고 나서 사람들은 그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시신이 놓인 들것 앞에 섰고 아락시우스를 제 맞은편으로 불러 거기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들것 뒤에는 고위 성직자 두 사람을 위치시켰습니다. 저는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길을 열어 가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장례행렬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들것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 성스러운 광경을 보고 또 보려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더디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것의 양편에서는 길게 열 지은 처녀들과 수많은 부제들과 하위 성직자들이 손에 초를 들고 대열을 이루어 걸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전례에 있어서의 행렬과도 같아 보였고, 우리는 세 소년이 찬미가를 부르는 것처럼 행렬의 선두에서 후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은수처에서 부모님의 유해가 안치된 거룩한 순교자 성당까지는 7~8 스타디움(stadium)9)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거리를 가는 데는 꼬박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우리를 따라왔던 사람들의 무리가 계속 늘어나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행렬은 앞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들것을 내려놓고 기도를 바쳤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다시 탄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가 그쳤고 동정녀들은 마크리나의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마크리나를 안치하기로 하였던 부모님의 무덤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그때 동정녀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더 이상 우리가 그의 거룩한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울부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정녀들도 그와 함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한 소란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져서 거룩하고 정연하게 시편을 노래할 수 없었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로 인해 들리는 것은 오직 동정녀들의 울부짖는 소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렵사리 손짓으로 조용히 할 것을 명했고, 선창자가 주도하여 교회에서 부르는 귀에 익은 기도를 노래하자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혀 다시 기도 하였습니다.
 
 
매장
 
35. 기도가 끝나자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금하는 신적 계명을 어기게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육신은 분명 썩어서 녹아내렸을 것이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고 혐오스럽게 변했을 터인데, 만일 부모님의 시신에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수치가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내가 (성경에 적힌) 그러한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니 노아가 자기 아들에 대해 가졌던 분노가 제게 미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바로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덤의 덮개가 열리고 우리 눈앞에 드러난 부모님의 시신은 이미 관의 한 끝에서 다른 한 끝까지 펼쳐진 깨끗한 아마포로 덮여진 상태였습니다. 부모님의 시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아마포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지역의 주교와 저는 들것에서 마크리나의 거룩한 시신을 내려 어머니의 시신 곁에 놓은 다음 그들을 위해 공동기도를 바쳤습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는 평생을 한 마음으로 죽은 후에라도 자신들의 육신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또 죽음이 생전의 친교를 깨뜨리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의 귀환: 어떤 군인과의 만남
 
36. 예법에 따른 모든 장례 절차를 다 마치자 저는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무덤 위에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그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무너진 채로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길을 가던 중에 고위층 군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세바스토폴리스라고 불리는 폰투스의 작은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지휘관이었고 거기서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을 지날 때 그는 정중하게 저를 맞았습니다. 그는 저의 불행을 듣고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는 우리 집안과 친교와 교분을 통해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마크리나가 행한 기적에 관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여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선이 인간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는지요.”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크리나를 방문했던 이야기
 
37. “어느 날 저와 저의 아내에게는 덕행의 학교(phrontistèrion)10)를 방문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축복 받은 사람이 한 평생을 보내는 곳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전염병에 걸려 눈이 아픈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병 때문에 눈동자 주위의 각막이 두꺼워지고 하얗게 변해서 그의 모습은 끔찍하고 비참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처소로 들어갔을 때, 저와 저의 아내는 서로 떨어져 저는 그 곳에서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들을, 제 아내는 그런 여인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신의 형제인 페투르스가 남자들의 거처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는 동정녀들의 거처에서 성인을 만났던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우리는 이제 그 은수처를 떠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떠날 채비를 하였을 때 사람들이 양편에서 우리를 다정히 만류하였습니다. 당신 형제가 저를 철학적 식탁(수도승들의 모임)에 자리 하도록 초대했고, 하느님께 축복 받은 사람도 제 아내를 떠나보내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 딸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 그들에게 (철학적) 식탁을 마련하여 철학의 풍요로움을 제공하기 전에는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눈에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병든 눈을 보고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의 청 하나를 들어주시고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면 그런 당신의 호의에 대한 성의 표시로 제가 보답을 하겠습니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 보답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제게는 약이 있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가 말했습니다. “그 약은 눈병을 치료하는 특효가 있습니다.”
 
마크리나가 그러한 약속을 했다는 소식이 동정녀들의 거처에서 제게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곧 떠나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초조해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적
 
38. 융숭한 대접을 받고 우리 마음은 흡족해졌습니다. 위대한 페투르스가 몸소 우리의 시중을 들었고 우리 마음을 흥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마크리나는 온갖 예를 갖추어 저의 아내를 떠나보냈습니다. 우리의 귀향길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여행 중에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남자들의 거처에서 본 모든 것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 역시 자신 안에 아무것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아주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듯이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마크리나가 눈병 치료약을 약속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야기를 멈추고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죠? 우리가 어떻게 그가 우리에게 했던 약속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했던 그 안약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나요!”
 
저는 그런 부주의함에 괴로워하면서 누군가에게 곧장 되돌아가서 마크리나에게 치료약을 청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 때 유모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우연히 자기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아내는 아이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부주의함을 더 이상 탓하지 마세요.”
 
그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서 큰 소리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약속된 것을 완전히 받았습니다. 병을 낫게 하는 참된 약을 말입니다. 치유는 다름 아닌 그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이미 효력을 나타냈습니다. 아이의 눈은 신적인 치료제로 치유되어 더 이상 어떤 병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아이를 들어 제 품에 안겼습니다. 저는 복음서에 나오는 놀라운 기적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소경들을 다시 보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하느님의 여종이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매한가지입니다.” 이 말을 하고나서 흐느낌으로 그는 목이 메었고,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 군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맺음말
 
39. 저는 마크리나와 함께 살았고 그에 관계된 세세한 일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들은 이야기들 또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이 이야기에 덧붙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경험한 범위에서 이야기 전개의 신빙성을 판단하고, 듣는 자신들의 이해력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빈정거리고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이라고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근이 들었을 때 놀랄만한 수확을 거두어들인 것과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는데도 곡식이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전이나 후에도 항상 같은 양이 유지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외에 훨씬 놀라운 일들 이를테면 병의 치유, 구마,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참된 예언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믿기 어려운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정확하게 검증한 사람들에 의해 사실로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믿음의 정도에 따라 은사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적게 부여받고 반대로 자신 안에 믿음이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풍부한 은사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극히 부족하고 하느님의 선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떠한 해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더 이상 마크리나가 행한 위대한 기적들을 열거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마크리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이노니아, 2007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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