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라파엘로의 생애. 작품들 아테네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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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생활정보

화가 라파엘로의 생애. 작품들 아테네학당

1506년에 그린 라파엘로의 <자화상>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년 4월 6일 ~ 1520년 4월 6일 이탈리아 37세
(올해로 500주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아테네 학당>

2014년 바티칸투어 여행중 찍은 사진

라파엘로 아버지는 우르비노 공국의 궁정화가
하지만 10대 초반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그림은 부모가 아닌 1499년 페루자에서 페루지노에게 배웠다. 물론 예술가의 피는 흐르고 있겠지만
이후, 1504년부터 피렌체에서 활동하였다.
또다시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라파엘로는 교황 및 가톨릭교회의 의뢰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배웠고, 레오나르도로부터는 간결한 피라미드 구조와 효과적인 빛의 사용, 친밀감, 부드러운 색조 변화로 형태에 입체감을 주는 스푸마토 기법 등을 익혔다. 이를 통해 라파엘로는 호소력 짙은 고요하고 평온한 작품을 창안해낼 수 있었다.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 중에는
바티칸 교황청의 방들에 그린 프레스코
'라파엘로 방' 이다.

https://simjuliana.tistory.com/464

[이탈리아 여행] 로마 바티칸투어 #3 (라파엘로의방, 시스티나성당) 아테네학당, 천지창조

 바티칸 미술관 #3 Vatican Museums http://www.museivaticani.van Viale Vaticano, 00120 Città del Vatican (06)6988-4676  휴관일  매월 일요일 (마지막 주 제외),  1월 1일, 6일/ 2월 11일/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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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방은 총 4개의 방으로 다시 나뉜다.
1. 콘스탄티누스의 방
Room of Constantine (1517-1524)



2. 엘리오도르의방
Room of Heliodorus (1512-1514)


3. 서명의 방
Room of the Segnatura (1508-1511)

(이곳에 그 유명한 '아테나학당' 이 있다.)

4. 보르고 화재의 방
Room of the Fire in the Borgo (1514-1517)


방의 순서는 연도 순으로 되어있지 않았다.

그 중 교황이 개인 서재로 사용하였던 ‘서명의 방’ 벽면에는 철학, 신학, 법, 예술을 주제로 한 네 개의 프레스코가 그려졌으며, 1511년에 완성된 <아테네 학당>은 철학을 대표한다.
이야기와 구성을 최상으로 구사할 줄 알았던 라파엘로의 재능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현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진리를 향한 이성적인 탐구를 찬양하고자 했다.
이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업적과 관련된 자세와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여러 무리로 나뉘어 철학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작품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바티칸 박물관을 들어서면서 부터 짐작할수있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 그림이
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그래서 나도 입장귄 퍼즐 맞추기 해봤다^^
그중에서도 가운데 두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로마에서 작업한 다른 작품으로는 새로운 심리적 깊이를 보여주는 초상화들과 매력적인 바티칸 태피스트리 연작이 있다.

바티간 피나코테카관 에 하이라이트 가장 유심히 봐야 할 작품이다.

https://simjuliana.tistory.com/461

[이탈리아 여행] 로마 바티칸 투어 #1 (PINACOTECA 피나코테카관)라파엘로

바티칸 미술관  Vatican Museums .vanhttp://www.museivaticani Viale Vaticano, 00120 Città del Vatican (06)6988-4676  휴관일  매월 일요일 (마지막 주 제외),  1월 1일, 6일/ 2월 11일/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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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작품 3점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라파엘로의 작품 셋

사람들이 앞에서 떠나질 못하고있다

가운데 가장 큰 그림 '그리스도의 변모'

<그리스도의 변모>
The Transfiguration of Jesus

이 거대한 제단화는 천재화가 라파엘로의
마지막 작품이다.
메디치의 주문으로 그리지 시작했지만
37세로 요절해
다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의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완성 시켜줬다고 한다.

왼쪽 포리뇨의 성모
라파엘로의 20대후반 작품이다

<포리뇨의 성모>
La Vierge de Foligno, 1512년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20대 중반에 그린 그림으로 안정적인 삼각구도를 취하고 있다
<아테네 학원>, 바티칸 궁의 대벽화 등을 완성한 후 라파엘로는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오른쪽

<성모의 대관식>
Coronation of the Virgin, 1503년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페루지아에서 머물고 있었던 시대의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특히 작품의 구도면에서 그가 영향받은 페루지노와
핀투릭키오의 흔적이 뚜렷하다.
화면이 상하로 이등분되어 각기 독립적인 구성이 돼 있고, 또한 양면이 분리될 수 없는 내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로 고유의 표현은 지상의 많은 성자들의
개성적인 표정에 있고 정적이고 온화한 자세에서
다시 엿볼 수 있다.
그림의 주제가 어떻든 라파엘로는 항상 채색면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감과 색조를 나타내며
명쾌함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의 유래는 페루지아의 명문(名門)의 여인
오디의 의뢰로 당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1797년 프랑스 군은 이 그림을 파리로 약탈해 갔으나, 1815년에 이탈리아로 반환되어 이곳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났던 날인 부활절 전 성금요일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서른일곱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라파엘로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기에 가장 화려한 장례식으로 치러졌고 판테온에 묻혔다.

https://simjuliana.tistory.com/449

[이탈리아 여행] 로마 일 제수성당, 나보나광장, 판테온, 피우미 분수

골목을 돌아 나와서 마주하게 된 로마 일 제수성당 Church of Il Gesù Via degli Astalli, 16, 00186 Roma, 이탈리아 바크로 양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서강대학교, 광주 가톨릭대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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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하면 ㅠ
나 개인적으론 아주 슬픈곳이다

판테온 입장시간이
평일은 19시 40분
일요일은 18시
내가 도착한 시간은 18시1분 ~ㅠ
그렇게 밖에서 맘속으로 울었다는

천재화가 라파엘로 그에게도 사랑은 있었다
모든 작품속에 녹아 있는 그의 연인은


죽을때까지 독신이었지만 정부(情婦)가 있었는데,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여인으로, 라파엘로보다 10~17살이나 연하였으며 '라 포르나리나'(제빵사네 딸)이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라 발레타가 1516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1516년부터 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많은 작품의 성모 마리아 모델은 그녀가 한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그런데 사랑하면서도 당시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 동거 관계만을 유지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라파엘로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의 조카딸과 약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결혼 상대가 높으신 분인 추기경의 조카딸인 데다 추기경 역시 라파엘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형이라(라파엘로 본인이 초상화까지 그려줬을 정도다.) 차마 파혼하고 자기보다 훨씬 미천한 제빵사 집 딸과 결혼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낼 수도 없었던 그는 따라서 약혼을 해놓고도 결혼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버틴 것이다.
가장 마르게리타를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작품은 '라 포르나리나'인데,

그녀의 왼손에는 약혼반지가 끼어져 있으며 팔에는 'RAPHAEL URBINAS(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글씨가 새겨진 리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파엘로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명예를 위해 반지를 덧칠로 지워버리는 바람에 이 사실은 500년이 지난 2001년에서야 복원과정에서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라 포르나리나보다 3년 먼저 그려진 라 발레타도 라 포르나리나의 모델과 외모가 같아서 동일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마르게리타 루티는 라파엘로가 죽은 후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하며, 이후의 일생은 기록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수도원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생을 마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