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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여행/ITALY 2014

[이탈리아여행] 로마 바티칸투어 #3 (라파엘로의방, 시스티나성당)아테네학당, 천지창조

 

 바티칸 미술관 #3 

Vatican Museums

http://www.museivaticani.van 

Viale Vaticano, 00120 Città del Vatican

(06)6988-4676

 휴관일

 매월 일요일 (마지막 주 제외), 

 1월 1일, 6일/ 2월 11일/ 3월 19일/ 부활절, 부활절 다음 월요일

 5월 1일 / 6월 29일/ 8월 14일, 15일/ 11월 11일/ 12월 8일, 25일, 26일

 요   금

 16유로 (무료:미취학 어린이,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피나코테카관 Pinacoteca (유명회화관)피냐의 안뜰 Cortile della Pigna (솔방울정원)

   피로 클레멘티노 박물관 Museo Pio Clementino

   (팔각정원,뮤즈의 방,로톤다의 방,그리스십자가의 방,동로마조각관, 융단의 방, 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 Stanze di Raffaello → 시스티나성당 Cappella Sistina 

   성베드로성당 → 성베드로 광장

 

 

 피로 클레멘티노 박물관의 마지막인 지도의 방을 나와

 

 

드디어 라파엘로의 방으로 향한다.

 

 

떨린다. ㅋ

 

라파엘로의 방은 교황 율리우스 2세(1503-1513)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율리우스2세가 교황이 되자 보르지아에 있던 교황의

거처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온통 알렉산더 6세의 공적을 미화한

벽화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그림들이 교황의 맘에는 안들었을터

그래서 자신의 시저에 맞는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던 중 당시 바티칸의 예술 고문인 브라만테를 통해 

 20대 중반의 라파엘로를 추천받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라 믿음직 스럽지 않았는지 먼저

<서명의 방>에 그림을 그려 보라하고 했단다.

 

역시나 당연히 율리우스 2세는 <서명의 방>에 라파엘로가 그린 작품에 감명을 받아서

1508년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4개의 방을 주면서

있던 그림을 다 지우고 다시 그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 지워야 할 그림에 라파엘의 스승이였던 페루지노외 에도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데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

 

그래서 라파엘의 방은 총 4개의 방으로 다시 나뉜다.

  • 콘스탄티누스의 방 Room of Constantine (1517-1524)
  • 엘리오도르의방 Room of Heliodorus (1512-1514)
  • 서명의 방 Room of the Segnatura (1508-1511)
  • 보르고 화재의 방 Room of the Fire in the Borgo (1514-1517)

방의 순서는  연도 순으로 되어있지 않았다.

제일 먼저 들어간방은 콘스탄티누스의 방 이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다.

1584년 라우레티가 그린 그림인데

제우스 신의 동상을 부숴버리고 그위에 십자가상을 올린다.

이교도를 이긴 그리스도교를 상징하고 있다.

 

 

대놓고 까기 다

 

 

 

 

 

 

 

 

 

 

그리고 서명의 방 이다.

 

 

천장의 원형 공간에는 인과의 인식 Casarum Cognitio 라는 라틴어 팻말이 새겨진 그림이 보인다.

이 두권의 책을 들고 왕좌에 앉아 있는 여인은

인과의 인식을 의인화 한것인데

그녀가 있고 있는 이 두권의 책은 윤릭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것ㅇ로 이 것은 철학의 두 분야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면 상단에 동그란 메달속에 월계관을 쓰고  왼속에 하프를 들고있고 오른손엔 책을 들고있는데

이는 서정시의 여신 폴룸니아 (Polumnia)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아래 벽면 (창문의 위)에 그려진 그림은

시의 뮤즈들이 살고있는 파르나스산이 그려져 있다.

파르나스 산은 신들의 영감이 가득한곳으로

그곳에 음악의 신 아폴론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그의 곁으로 뮤즈들과 시인들이 황홀해 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보고싶었던 아테네 학당

 

 

이곳 바티칸 미술관 (박물관) 입장권에도 새겨진 그림이기도 하다.

요렇게 인증샷을 ^^

 

 

라파엘로의 예술성이 탁월하게 반영된 이 작품에는

성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있는 학당에서 신학, 철학,수학, 천문학, 예술등

각 학문을 대표하는 54명의 학자가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는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하나하나 짚어가면 보는 재미가 있다.

유명인들의 계모임 장소 ㅋ

 

 

맨먼저 가운데 두사람

 

 

입장표에도 나와있는 두사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정신 세계를 중시하는 플라톤

우주에 대한 대화편 <티마이오스>책을 팔에 끼고

이데아를 상징하는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고

 

반면, 현실 세계를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현존 최고의 윤리학책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책을 팔에 들고

눈으로 보고 판단할수 있는 지상을

즉 땅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쪽 흰 대리석 벽에 각각 새겨진

아폴로와 아테네 (미네르바)

아폴로는 벨베데레 정원에서 본 시, 음악, 예언의 신이고

아테네는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에 해당하며 전쟁과 의술, 지혜, 음악의 신이다.

 

 

앞머리가 벗겨지고

들창코인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남긴 소트라테스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군인같은 인물은

소크라페스에게 감명을 받았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군인이며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소크라테스 회상>의 저자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옆에서 아무관심 없는듯 듣고 있는

있는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

왼쪽에 누군가를 부르는듯 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열성적인 제자로

그가 독배를 마실때도 함께했던 아이스키네스

 

 

왼쪽아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

그리고 그의 앞에 작은 흑판을 들고 있는

여성 수학자 아낙사고라스 가 평형수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평형수에 대해서 알고있었다고는

사실이 입증되는 그림이다.

이때도 아는걸 왜 세월호는 모른단말인가..ㅠ

그녀의 왼쪽에 파타고라스를 필기를 훔쳐보고있는 사람은 이슬람 출신의 학자 아베로에즈

더왼쪽에 녹색화관을 쓰고있는 데모크리토스

오르쪽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은 존재의 철학자라 불렸던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그의 왼쪽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이다(얼굴은 라파엘로의 애인)

오른쪽에 책상에 기댄채 사색에 잠겨 앉아있는 사람은 천문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 (얼굴은 라파엘로가 존경한 미켈란젤로)

 

 

그리고 남들이 뭐라하든

누더기옷을 반쯤 입은채

계단에 쭉 늘어져 누워있는 디오게네스

무려철학박사 강신주가 말했던 바로 그구나..ㅋ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 해달라는걸 말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했을때 그는 대왕에게 조용히 소리친ㄷ.

"옆으로 좀 비켜줄래 너때문에 햇볕이 안들어오잖아"

정말 멋진 사람이다. ㅋ

 

 

 

바닥에 컴퍼스를 돌리고있는 사람은

"수학에는 완도가없다"라고 말했던 유클리드

수학자 답게 콤파스를 들고 칠판에다 설명하고 있다.

 

그뒤에 천구의를 들고서있는 수염난 사람은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자 천문학자인 조로아스터

 

그리고 마주보고 우리에게 뒷통수만 보이며 지구의를

들고있는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그 바로 오른쪽에 우리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있는 젊은 남자 바로 라파엘로 자신이다.

참 수줍은 모습으로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그마저도 겸손한 그는 그의 왼쪽에 흰모자는 자신의 제자

소도마 옆에 숨어있다.  

 

 

이 그림을 2년만에 완성했다는 라파엘로..

유명인사들을 하나하나 특징을 잡고 위치를 정하고 그림을 그렸다는게 정말 대단하다.

 

 

라파엘로의 치밀한 계산아래 그려진 상상화이지만

규모나 웅장한 느낌, 조화감등은 초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무대 같은 투시도의 공간속에 인물들은 놀라운 조화를 이루었고 서로 시각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다.

 

 

1점 소실점에 의해 원근법을 따르고 있어

등장인물들이 많아도 산만하지 않고 집중되는 느낌을 준다.

고전 건축의 균형감각과 질서, 선명성, 부분과 전체의 조화가 뛰어난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이란 평가가 맞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 방인 화재의 방 이다.

이방이 화재의 방으로 붙혀진 이유는

847년에 바티칸의 보르고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이 화재를

레오 4세교황의 강복으로 가볍게 진압했다는 기적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아래의 그림이다.

그림 저 뒤쪽에 아치형 탑안에 레오 4세가 화재가 꺼지는 강복을 내리고 있다.

 

 

이 그림은 799년 교황 반대파에 잡혀 감금을 당했던 레오 3세가

프랑스의 왕이였던 샤를마뉴의 도움으로 다시 권좌에 복귀하게 되었다.

이에 레고 3세가 샤를먀뉴에게 서 로마 제국의 황제로 임명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오스티아의 전투

849년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리고 몇개의 방을 잠시 지나면

드디어 천지창조를 볼수있게된다.

바로 시스티나 성당이다.

그런데 아타깝게도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을 찍을수가 없단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물수도 없단다 ㅠ

 

 

 

 

드디어 시스니타 성당 입구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정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안내자는 외치고 있었다.

Be quiet!!

No photo!!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출처 http://www.vatican.va/various/cappelle/sistina_vr/index.html

 

바티칸 홈피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성당에 들어섰을때 사람들이 몰래 찍기 시작했다.

나도 카메라를 아래로 놓고 천장 사진을 한장 찍었다.

( 글에 사진을 올렸지만 내린다. 작품을 상하게는 하는 짓는 누구가에 글을 읽었다.

작품을 상하게 하는건 후레쉬를 터트렸을때 일이다. 그 누구도 후레쉬는 터트리지 않았다. )

 

가운데 천지창조가 보인다.

이게 그림이란 말인가.. 정말 쏟아져 내려올것만 같았다.

 

이 그림들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장 프레스코화는 총 800제곱미터의 넓이에 그려져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무 그림이나 천장을 향해 그려 넣기에도 빡빡한 4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불후의 작품을 남겼으니 미켈란젤로의 작업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출처 http://www.vatican.va/various/cappelle/sistina_vr/index.html

 

정면에는 최후에 심판이 보이지만 찍진 못했다.

정말 벽에서 인물들이 흘러 내려오는듯 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 프레스코화를 완성한 지 20년이 지나 서쪽 벽에 다시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1534~41)을 그렸고 한다

그 나이에 벽에 매달려서.. 어찌 그리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낼수 있었을까...

척추가 휘고 한쪽눈이 실명을 하고.. ㅠ

 

후대에 남은 우리는 멋진 작품들을 봐서 좋긴 하지만

왠지 이곳에서 노예처럼 가둬진채 그림을 그려낸거 같아 맘이 조금 아프긴 하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정말 멋지고 경위로운 그들의 작품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성베드로성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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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댓글입니다

    • 감사합니다 새로운일을 시작하시나봐요^^ 좋은 계획이신거같아요 좋은 결실까지 맺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용하셔두 됩니다 저두 아직 여행에 반도 못올린 상태라^^;

  • 이탈리아 2018.10.29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켈란젤로 그림에 감동하면서 그 작품 훼손하는 사진은 몰래 찍고, 그걸 또 올립니까?
    그리고 무슨 그 시대 작가들이 갇혀서 노예처럼 작업한 듯 하다고...한숨만 나오는군요...아무렇게나 자기 생각대로 쓰는 글들이 정말 질립니다!

    •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작품이 훼손 되진 않습니다. 후레쉬를 터트려 사진을 찍을 경우라면 다르겠지요 저는 후레쉬를 터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내리겠습니다.
      말씀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진이니까요

      노예처럼 작업 했다라고 쓴건
      자기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아닌 주교가 원해서 그려 넣어야 했고, 스승의 그림에 덧그림을 그려넣어해 했으며 시간안에 그려야 했던 그들을 생각하고 쓴 제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