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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경상

[함안여행] 서산서원, 생육신(김시습, 조려, 원호, 이맹전, 성담수, 남효온)의 위패를 모신곳

 

산서원 西

경상남도 함안군 군복면 원북리

☎ 055-585-5098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후기 서원이다.

1706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생육신인 김시습() · 조려(원호(이맹전(성담수(남효온()

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생육신(臣)이란?

조선 제6대왕 단종이 그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세조에게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신하들을 지칭한 것이다.

사육신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이 생명을 바쳐 절개를 지켰다면

이들은 살아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체 살아가며 단종을 추모하였다고 한다. 

 

 

서산서원 입구

왼쪽에 너른 무료 주차장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기위해선 돌 다리를 건너야 한다.

 

 

 

 

 

 서산서원 안내도

 

 

서산서원은 1703년(숙종 29) 경상도 유학 곽원령 등이 창건하였으며,

1713년 나라에서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1984년 지역 유림과 조려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우, 강당, 원장, 문, 조려선생사적비, 생육신사적비 등을 갖추어 복원하였다.

해마다 음력 3월 1일과 9월 9일에 생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숭의문

 

 

정문을 들어서니

 

 

 

 

방명록과 서산서원 팜플렛이 있다.

 

 

좀더 쉽게 서원을 둘러 볼수 있겠구나..ㅋ

 

 

들어서자 마자 정면에 보이는 것이

서산서원 현판이 보인다.

 

 

 

 ② 육각정 (서원 관리실)

 

생육신을 상징하는 뜻으로 육각형으로 세웠다고 한다.

 

 

 

 

 

 ④ 상의재

서재라고도 하는 유생의 숙소가 있다.

 

 

 

 

 

 숭의당

유생이 모여 학문을 강록하는 곳이라고 한다.

 

 

어흥 사자가 사실 스럽네..

 

 

 

 

 

 

 

 

 

 ⑥ 정절공 사적비

어계 선생의 청빈하고 고결하신 생애와

충절을 새겨 후세에 귀감이 되게하기 위해 세운 사적비라고 한다.

 

 

 

역시나 생육신이라 거북이 머리가 여섯개 있는듯 했다.

 

 

생육신(臣)을 간단히 알아볼까..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즉위하자

불합리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섬길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살아간 여섯분의 신하들이다.

 

김시습 (, 1435~1493)

서울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

어려서 부터 글짓기가 남달라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21세때 단종을 내몰고 세조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들 듣고 통분하여

공부를 접고 책도 모두 불태워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부터 전국 방방 곡곡을 방황하며 여러 글을 썼는데

그중에 경주 남산에 입산해 금오산실에서 칩거하면서 쓴글이 금오신화이다.

그 이후에도 방황하며 여행지마다 시를 써서 남겼으며

말년은 부여의 무량사에서 병사하였다.  

 

조려(旅, 1420~1489)

이곳 함안출신으로 1453년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국자감에 입학하여 학문연구를 하던중

세조가 왕위에 올랐을때 고향 함안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고

백이산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원호(昊, ?~?)

원주 출신으로 세종때 여러 청환직을 지내고 문종때 집현전직제학에 이르렀지만 세조가 왕위에 올랐을때

병을 핑계로 향리 원주로 돌아와 은거 한다.

 

이맹전(專, 1392~1480)

구미 출신으로 세종때 문과에 급제해 한림이 되었다가 사간원좌정언, 지제교, 소격서령을 거쳐 거창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던중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인인 직제학 김성미가 사는 선산 망장촌 (지금의 구미)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30년을 하루같이 폐인으로 자처하며 손님도 사절하며 한양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살았다고 한다.

 

성담수(壽, ?~?)

창녕출신으로 아버지가 단종복위운동때 관련되어 김해로 귀양갔다가 3년후 풀려나 돌아가신것에 충격을 받아

벼슬을 단념하고 파주 문두리에 은거하며 살았다.

 

남효온(溫, 1454~1492)

의령출신으로 일찍 사마에 올랐지만 스스로 벼슬할 생각을 버리고 유랑하다 39세에 병사했다.

현덕왕후의 능을 복위시키려고 상소를 올렸으나 저지당했으며

그 일로 갑자사화 때는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⑧ 경앙문

 

 

 

 

 ⑪ 충의사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서 문화재관리국의 고증 설계와 심의에 따라

매와 용무늬의 12색 특수 단청을 하였다고 한다.

 

 

 ⑨ 전사청  

제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제기와 제수를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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