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옥산서원 (양동마을과 함께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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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경상

[경주여행] 옥산서원 (양동마을과 함께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경주 옥산서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옥산리 7)

☎ 051-762-6567

입장료 : 없음

 

 

 

경주 양동마을 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양동마을 http://simjuliana.tistory.com/619 )

옥산서원()을 가기위해 부산에서 경주로 향한다. 

 

 

잠깐 내리고 말줄 알았는데

내내 비가 내린다.

 

 

  

 

빗속을 달려 겨우 도착한 옥산서원 입구..

 

 

유물전시관은 월요일이라서 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전시관을 지나 옥사서원길를 걷는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1573년(선조 6)에 창건되었다.

이언적은 조선 중종때의 문신으로

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종묘에 명종의 공신으로 모려져 있다.

그가 타계한 후 1572년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유림의 뜻에 따라 성원을 창건하였으며

서원은 1574년에 선조에게서 '옥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5녀(1868)에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때에도 헐지 않고 그대로 살아 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중 하나이다. 

 

서원 건축의 역사로 보면 옥산서원은 초기의 건축물에 해당하는데,

당시에 지어진 서원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구성을 따랐던 데 비해,

이 서원은 틀에 짠 듯 질서 정연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했다던 이 성원의 원규(지금의 학칙)만큼 이 건축물에서도 긴장과 절제가 묻어난다.

 

<옥산 성원 종합 안내>

 

 

 

 

 영락문 亦樂門

 

논어 학이편에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있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역락 (亦樂)을 가져왔다고 한다. 

역락문 이름은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명명하고

현판의 글씨는 한석봉의 글씨라고 한다.

 

 

 

 무변루(無邊樓)

 

입구에 들어서자 마다 무변루 라는 누각이 나타난다.

무변은 주염계찬(周廉溪贊) 가운데 풍월무변(風月無邊: 아름다운 자연은 끝이 없다)에서 無邊을 취한 것이라 한다.

처음 문루 이름을 납청루(納淸樓)라 하였지만 노수신이 선생의 유허에 맞지 않다고 무변루로 고쳤다고 한다.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靡欠靡餘 罔終罔初 光歟濟歟 游于太虛(미흠미여 망종망초 광여제여 유우태허)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다, 빛이여 밝음이여 태허에 노닐다

 

 

이어서 계단을 오르니 마당이 전개된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정면에도 옥산서원 현판이 있고

뒤면에도 옥산서원 현판이 있다.

 

앞면에 옥사서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가기 진전인 54세 (1839년)에 쓴것이라고 하고

 

 

그리고 뒷면에 옥산서원은

서원 창건 당시(1572)에 쓴 것으로 아계 이산해의 글씨라고 한다.

관지(款識)를 보면 옛날 현판 글씨를 빼껴 써서 걸었다는 뜻의 舊額摹揭(구액모게)라는 글이 적혀있다.

 

 

 

 해립재(偕立齋)

 

해립(偕立)은 경의해립(敬義偕立)으로 경건한 마음가짐과 신의로서 사물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敬直義方 內外交相 惟操弗忘 天德之光  (경직의방 내외교상 유조불망 천덕지광)

경은 바르고 의는 방정하니 안과 밖이 서로 교섭한다.

오직 이것을 붙잡아서 잊지 않으면 천덕이 빛나리라.

 

 

 구인당(求仁堂)

 

이곳 옥산서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구인당(求仁堂)

회재선생이 만년에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남긴 많은 저서 중 대표적 저서인 구인록(求仁錄)에서 유래한 것이다.

선생은 인()의 본체와 실현방법에 관한 유학의 근본정신을 확인하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 하였는데 이러한 회재선생의 뜻을 안 후학들이 그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으로 보여진고 한다.

이 구인당의 편액글씨는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중 한 명인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心德何損 放而曰遠 一念知反卽 此是本(심덕하손 방이왈원 일념지반즉 차시본)

 

밖으로 나와보니

큰 너럭바위들이 가득하다.

들어갈때는 몰랐던 바위들..

 

 

 

 

벤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마을, 옥사성원 등재기념 이라고 나무에 새겨져 있다.

 

비가 점점 굵어진다.

아쉽지만 여기서 되돌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