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 니고데모, 니코데모 축일 8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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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니고데모, 니코데모 축일 8월3일

 

성인 니고데모

San Nicodemo Membro del Sinedrio 
St. Nicodemus 

 

 

성인 성인 니고데모 (Nicodemus)
축일 8월 3일 활동년도 +1세기경
신분 신약인물,예수의제자,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니고데무스,니꼬데모,니꼬데무스,니코데모,니코데무스

 

예루살렘 유대인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고, 산헤드린의 멤버였던 성 니코데무스(또는 니고데모)는

어느 날 밤에 예수를 몰래 찾아왔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선생님”으로 인정하며, 영생에 대한 질문과 세례에 대하여 담화하였다(요한 3,1 이하).

또한 그는 예수를 두고 논란을 일삼는 바리사이파와 대제관들에게 대하여 예수를 두둔하는 말을 하였다(요한 7,50-52).

또한 그는 예수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많이 가져 왔으며,

아리마태의 요셉과 더불어 예수님을 새 무덤에 모셨다(요한 19,39-42).

신약에서는 직접 언급한 바는 없으나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리라 믿는 것이다.

한 복음서 외경에 의하면 초세기 교회에서 성 니코데무스의 이름은 자주 회자되었다.

그는 비록 신약성서에 그의 개종이나 순교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늘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 니코데모(요한 3,1-8; 7,52; 19,42) -

 

저는 ‘니코데모’입니다. 제가 바로 니코데모라고요.

아! 여러분은 아직 저를 잘 모르시는군요.

사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제가 니코데모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제 소개를 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심코 그때 버릇이 나와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바리사이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바리사이는 율법과 유다 전통에 철저했던 당시 지도층이었습니다.

바리사이는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대인의 회당인 ‘시나고그’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산헤드린’ 의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다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법정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회와 고등 법원의 권한을 동시에 가진 곳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또한 저는 율법을 권위 있게 가르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제가 얼마나 당시에 최고의 지식층에 속하는 엘리트였는지 아실 듯합니다.

이처럼 당시 저는 백성들에게 언제나 진리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고,

어느 정도 존경받고 권위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 자신은 늘 진리에 목마른 상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허전하고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나 표징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앞서 말씀 드린 저 자신의 신분 때문에 어찌하지 못한 채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밤에’ 그분을 찾아 갑니다. 사실, 바리사이들은 밤에 율법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도 밤에 성서를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어, 그분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것은 저로서는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밤에 그분을 찾아 간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에게 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최고 지도자층에 있는 제가 한낱 목수 출신인 그분을 찾아갔었다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면,

제가 그동안 쌓아 왔던 지위와 명예는 한 순간에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의 시선을 피해 깊은 밤에 몰래 그분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그날 밤 저에게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 커버린 어른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은 저에게는 아주 낯설게 들렸습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다는 말씀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다시 말씀하심으로써,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이 ‘위로부터’

즉, ‘하느님으로부터’ 나는 것이며 이는 곧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시 남’은, 곧 ‘새로 남’, ‘거듭 남’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에 있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면에서 또 다른 태어남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나는 일이 실제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새로 남’이 될 수 없었습니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에 불과할 뿐, 결코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영에서 태어난 것”이야말로 참된 영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저는 이러한 사실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참신앙의 빛이 부족한 당시의 저로서는 그분의 말씀은 한낱 궤변처럼 느껴졌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참으로 믿지 못하는 어두움에 사로잡힌 존재였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빛’이셨지만, 저는 ‘어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밤에’ 그분을 찾아온 저는 다시 어둠 속으로 슬금슬금 소리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에 대하여 다시 증언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몇 년 뒤였습니다.

 당시 그분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미움을 받아 곧 돌아가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빛’ 앞에서 이를 증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고발하는 동료들에게 그분을 은근하게 변호하였습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을 믿지 않는 당시 지도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그분께서 하신 일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그분께서 박해 받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변호는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라는 핀잔 한 마디에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때도 저를 그분과 한 통속으로 몰아 부칠 것이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 동안 쌓아 온 지위와 명예가 그분을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또 다시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느 길이 참된 길인지 알면서도 제가 가진 그 알량한 무엇, 제가 도달한 그 허망한 지위를 잃을 것이 두려워 그저 입을 굳게 닫고 침묵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날의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그동안 집착하고 매달려 왔던 지위나 명예는 언제 허물어질지도 모르는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은 바로 참된 진리일 뿐, 다른 그 어떤 것도 오히려 나를 부자유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게다가 정치ㆍ경제ㆍ종교 권력을 틀어 쥔 산헤드린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골고루 나누면서 따뜻하게 함께 사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게 편견을 가지고 죽게 하는 일에만 골몰할 뿐입니다.

 

결국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저는 오히려 용기 있게 그분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에게 청하여 그분의 시신을 거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을 도와서,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있는 정원의 새 무덤에 그분을 모셨습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 역시 그분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이였습니다.

 

저는 이제 ‘밤에서 낮으로’ 나왔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사형수의 제자라 비난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분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은 다시 나실 것이고, 저 역시 그분을 통해 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질문을 드렸던 제가, 이제 그분을 통해서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게 된 것입니다.

 

<출처 :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