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세례명] 라이네리오 축일 6월17일 (피사 여행자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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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가톨릭 세례명] 라이네리오 축일 6월17일 (피사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인 라이네리오

San Ranieri di Pisa 

St. Raynerius 
 

성인 성인 라이네리오 (Raynerius)
축일 6월 17일 활동년도 1115 ~ 1160년
신분 고행자 지역 이탈리아 피사(Pisa)
같은 이름

라니에리,라이네리우스

 

성 라이네리우스(Rainerius, 또는 라이네리오)는 이탈리아 피사의 부유한 상인이자 선주인

간둘포 스카체리 (Gandulfo Scacceri)와 밍가르다 부자체리니 (Mingarda Buzzaccherini)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때 유랑 음악가였다. 

그는 여행을 통해 코르시카 출신의 귀족 알베르토를 만났는데,

그는 "염소처럼 동물의 털로 된 망토를 두르고" 피사의 세인트 비투스(산 비토) 수도원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업적으로 유명해졌다.

레이네리우스는 그에 감명을 받아 독실한 가톨릭 교인이 되었다.

 

 

1146년 레이네리오는 성지까지의 운임을 지불하기 위해 상인으로서 생활했다.

그 사업은 그를 많은 항구로 데려갔고, 그는 선원들과의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

그의 여행은 그를 성지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재물이 그가 신에게 헌신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포기하고 완전한 가난 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거지로 살면서 7년 동안 성지에 남아 성지(성세풀크레, 타보르 산, 헤브론, 베들레헴)를 방문했다.

 

1153년 레네리우스는 피사로 돌아와 세인트 앤드류(산트 안드레아)의 수도원과 그 뒤로는 세인트 비투스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명성을 얻고 전도사가 되어 생전에도 성자 취급을 받으며 악마를 내쫓고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의 몸은 그가 죽자마자 도시를 거쳐 피사의 두오모에 있는 안식처로 옮겨졌다.

 

피사의 무덤

그의 삶은 캄포 산토에서 안토니오 베네치아노가 그린 프레스코스의 주제가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1161년 또는 1162베닌카사(Benincasa)라는 이름의 피사  사제는 성인의 길고 귀중한 약력를 썼다.

그는 라이네리우스가 엄격한 imitatio Christi (그리스도의 영정)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았다고 말했다.

베닌카사는 또한 "그리스도의 왕족 제사장"을 주장하기까지 하는데, 그 중 레이니우스와 세례를 받은 모든 제사장들이 그 일부였다.

비산 세력의 성장과 함께 레네리우스의 숭배는 지중해 전역에 퍼졌다.

1632년 피사의 대주교, 지방 성직자, 피사 치안판사들은 레네리우스를 도시와 교구의 수호성인으로 선출했다.

1689년 그의 몸이 두오모 제단에 유물이 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묵주를 들고 있는 머리띠를 한 수염을 기른 은둔자, 피산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든 머리띠를 한 젊은 순례자,

악마들에 의해 길러진 사람, 또는 머리띠를 한 채 죽어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