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 영주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비화
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여행/경상

[경북여행] 영주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비화

 

영주 부석사

부석사 주소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 전화 : 054-633-3258

부석사 입장료 :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부석사 주차비 : 자동차 3,000원

부석사 홈페이지 : http://www.pusoksa.org

 

 

 

https://simjuliana.tistory.com/4441

 

[영주여행] 소수서원, 소수박물관 (최초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주 소수서원 紹修書院 주소 :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연락처 : 054-639-5852 홈페이지 : https://www.yeongju.go.kr/open_content/sosuseowon/index.do 주차 : 무료주차 가능 입장료 : 어른 3천원 / 청소년 2천..

simjuliana.tistory.com

소수서원을 나와 부석사로 향한다. 

 

 

부석사

해마다 올 가을에는 가봐야지 꼭 가봐야지 했었는데 드디어 오늘이다. 

부석사는 목조건축물로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부석사의 모습은  어디를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이다. 

실제로 노을지는 부석사의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오기도 하는 곳이긴 했지만

우연찮게 부석사에 도착한 시간이 곧 해가 질듯해 우리는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전에 다 둘러볼 수 있으려나..

 

 

부석사 천왕문

사천왕이 모셔진곳이다. 

 

3층 석탑 (보물 제 249호)

부석사 삼층석탑은 양쪽에 동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탑이다. 

신라시대의 3층 석탑은 자인당의 석불들과 함께 이웃 절터에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다. 

소원 하나 빌고 자 다시 오르자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다. 

그 첫 번째 누각 범종루 현판에는 '봉황산 부석사'라고 되어있다. 

이름은 '범종루'이지만 범종은 범종각에 보관 중이고 보이는 건 법고와 목어가 보인다. 

중턱 뷰가 이 정도니..  무량수전에서 보게 될 경치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물 한 모금 하고 다시 오른다. 

사찰의 마지막 문이 보인다.  안양루

보통 마지막 문을 불이문이라고 하는데 이 안양 문이 불이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돌계단을 오른다. 

부석사 안양루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 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 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2층 누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석사 경내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펼쳐져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예로부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노래하는 시문을 남겼다. 

모두 뷰 맛집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우리도 한컷^^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17호)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석등이라고 한다. 

부석사의 본당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몇 안 남은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고려시대 중기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건축의 형태, 비례미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浮石寺無量壽殿

배흘림기둥..

위아래는 지름이 얇아지고 가운데 허리 부분은 굵게 항아리 모양의 기둥이 보인다. 

기둥을 배흘림기둥으로 만든 이유는 일자로 생긴 기둥을 멀리서 보았을 때 

안쪽으로 굽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방지하여 건물을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라고 한다.

 

무량수전 내부 소조 여래좌상 국보 제45호를 보았다. 

소조라는 이름은 흙을 빚어서 만든 불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흙색은 아니고 금칠이 되어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무량수전을 나와 왼편으로 향한다. 

이곳에 '부석사'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석'이다. 부석사 창건에 얽힌 선묘 설화와 관련 있는 바위다. 

설화를 서술해 보자면 

더보기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을 갔을 때, 그를 사모하던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의상은 승려라서 끝내 선묘의 애정을 거절했고,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서 의상의 귀국 뱃길을 안전하게 지켰다고 한다.

이후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 지역의 도적떼들이 이를 방해하자, 

선묘가 큰 바윗돌이 되어서 하늘을 떠다니며 도적들을 물리쳤다. 

그 바윗돌이 지금 보이는 부석사 뒤뜰에 있는 바위다.

그래서 절 이름이 뜰 부(浮), 돌 석(石)을 써서 부석사라고 전한다.

(돌 석 자의 네모 안에 점이 하나 있는데, 바위가 하늘로 떠오르지 않도록 고정한다는 의미로 찍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 따라, 부석사에는 선묘에게 제례를 지내는 선묘각이 있다. 

무량수전 뒤로 산을 더 오르기 시작했다. 

보물 제249호 부석사 삼층석탑

조사당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에 세워졌으며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선조 6년(1573)에 다시 고쳐졌다고 한다. 

 

벽화가 있다.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상이 있는데 1916년에 떼어 내어서 지금은 부석사 성보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지금 이 그림은 새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석사 조사당 앞에 있는 선비화 

선비화의 학명은 골담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해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500면이 넘는데 모습은 아주 가냘프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2~1571 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옥인 양 높이 솟아 절 문에 기대어 섰는데         擢玉森森倚寺門
스님은 의상 대사 지팡이가 변한 것이라고 하네 僧言卓錫化靈根
지팡이 머리에 응당 조계수(曹溪水) 있어          杖頭自有漕溪水
천지간 비와 이슬의 은택 빌리지 않으리라        不借乾坤雨露恩

부석사를 내려가는데 해가 지기 시작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