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여행] 처녀 뱃사공비 악양루 (조선시대의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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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경상

[함안여행] 처녀 뱃사공비 악양루 (조선시대의 누각)

 

함안 악양루

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122

☎ 055-580-2301

처녀뱃사공비와 악양루는 함안의 둑방길 다음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그래서 오늘은 함안 처녀뱃사공비와 악양루로 향한다.

함안 처녀뱃사공비와 악양루는 함안의 둑방길 다음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그래서 오늘은 함안 처녀뱃사공비와 악양루로 향한다. 

한국 관광공사에서 '노래와 문학의 고향을 찾아서'라는 테마아래 2010년 12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1.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충북 옥천)

2.  문화의 고장을 거닐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

3.  살아있는 문학의 숨 (전남 장흥)

그리고 이곳 '그리움도 사무치면 노래가 될까?' (경남 함안 처녀뱃사공비) 4곳을 각각 선정해 발표했다고 한다.

 

12월이 가기전 네곳을 다가보진 못해도 함안은 꼭 가봐야겠다생각했다.

함안에 대산성당이 있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찾은 경남 함안 

그리고 젤먼저 만나게된 처녀 뱃사공비

도로가에 떡하기 서있어서 사실 조금 놀랬다.

내가 넘 기대를 했던가??^^;;

 

처녀 뱃사공 (윤길준 작자,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 에헤야 데헤야 /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에 앞가슴을 헤치면 /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 /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말씀이 수줍어 질때 / 에헤야 데헤야 /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50년도 더된 노래다.

처녀뱃사공비 뒤에는 처녀뱃사공 노래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남강이 흐르는 법수면과 대산면을 잇는 악양나루터에는 처녀뱃사공이 노를 저었다.

6.25전쟁이 막 끝난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윤부길(가수 윤복희의 부친)이 그 모습이 궁금해 사연을 듣게 된다.

당시 23세였던 박말순과 18세 박정숙 두 아가씨가 교대로, 군에 갔다 소식이 끊긴 오빠  박기준을 대신해 노를 젓게 된 것이다. 

그 애절한 사연을 가사로 쓰고, 1959년 한복남의 작곡으로 민요가수 황정자의 입을 통해 노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처녀뱃사공’ 노래는 1975년에는 최고의 인기를 끌며 전국에 알려지게 된것이다.>

 

음 윤복희 아버지가 유랑극단 단장님이셨구나..^^;;

어쨌든 조금은 아쉬운 처녀뱃사공비를 뒤로 하고 조금 떨어진 악양루로 향한다.

 

함안은 가야와욱을 이룬 여섯 가야중 하나였던 아라가야의 수도였다.

그래서 인지

요란스럽지도 그렇다고 심심하니도 않는 묘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악양루는 악양 마을 절벽에 있는 정자다

그래서 절벽에 길게 늘어지 계단을 올라가야했다.

저기 악양루가 보인다. 딱봐도  전망 좋은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듯 하다.

악양루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1857년에 세운것이다.  (그럼 160년은 더된거구나...)

악양루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앞으로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팔자(八)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 보다  문득

앗 저기가 뚝방길이구나

아까 함안관광지도 하나 얻을려고 잠깐 들렸던 함안군청에서 함안엔 관광지도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래고

놀랜가슴 달래려 슈퍼에서 커피하나를 사들고 주인아주머니께 여쭤봤더랬다.

그때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지

"함안은 뭐가 유명한가요?"

"수박이죠"

"ㅋㅋ 여름에 와야겠네 그럼 가볼만 한곳은 없나요?"

"함안 뚝방길 꼭 한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