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성모당 (한국의 루르드의 성모) 드망즈 안세화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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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성모당 (한국의 루르드의 성모) 드망즈 안세화 주교


 

 

대구 성모당

대구 중구 남산4동 225-1 대구교구청 내 (대구 유형문화재 제 29호)

☎ 053-250-3000

 

 

 대구성모당을 찾아가는길 대구성모당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나와 조금 헤매긴했지만 이내 대구 교구청을 찾을수있었다.

성모당은 대구교구청내에서도 가장 높은 곳 언덕에 있다고 했다.

 

 

 

교구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비스듬한 언덕을 걸어 올라간다.

넓은 마당앞으로 붉은 벽돌로 쌓아진 건물이 보인다. 이내 이곳이 성모당임 알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양팔기도를 하고 서계셨다..

나도 벤치에 목도리를 돌돌 말고 앉았다.

하루종일 불었던 겨울바람도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는듯 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그들의 기도와 간절함을 느끼며 나도 성모님앞에 묵주반지를 빼내 들었다.

 

 

 

성모당은 대구교구의 초대 교구장이였던 드망즈(안세화) 주교가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본따 건축한 건물이라고 한다.

설계와 모형을 프랑스 루르드의 것을 본땄을 뿐만 아니라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면까지도 흡사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스 루르드

1858년 2월 11일부터 18차례에 걸쳐 성모 마리아가 프랑스 루르드의 한 동굴에서 당시 14살이였던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난이후 세계적인 성모성지가 된곳이다.

 

그런데 왜 하필 드망즈(안세화) 주교가 루르드의 성모동굴을 본따 성모당을 만들었을까

 

드망즈(안세화)주교가 1911년 7월 부임 직후 교구를 위해 하느님과 루르드 성모님께 소원을 빌었고

그것이 모두 이뤄짐에 따라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의 서원은 이러했다.

"대구교구의 주교관대지에 주교 및 신부들이 거처할 집과 신학교를 건축해 주시고, 성모성당(계산성당)을 증축할 방도를

마련해 주시면 주교관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루르드의 성모굴을 본따서 유사한 동굴을 세워 모든 교우들이 이곳에

순력하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건물의 1911은 대구교구가 처음 생긴 해를 가르키고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허원에서

그리고 오른쪽 1918은 드망즈(안세화)주교가 빌었던 소원이 이뤄진 해라고 한다.

 

 

 

 

드망즈(Demange) 안세화 프로리아노 주교님

프랑스에서 태어나 24세에 사제품을 받고 같은해 조선교구 선교사로 임명돼 한국에 입국한 그는

뛰어난 학덕을 인정받아  36세 젊은 나이로 초대 대구대목구장으로 임명받게 된다.

그런 그가 볼모지였던 대구교구를 현재의 모습으로 갖춰갈수있도록 이끌었던 장본인기도 하다.

성직자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책을 써서 내적인 성직자들의 모습을 정착시켰으며

또한 주교관 건물, 교구관리소,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바오로 수녀원등 차례로 외적인 모습들을 만들어 

그가 바라고 우리가 바랬던 곧 하느님께서 바라셨던 모습으로 만들어 갔던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바랬던 모습

순교하면서 지켜갔던 그 신앙

겉으로 갖춰진 모습의 울타리 안에서 과연 내 마음속 까지도 그분들을 닮아가려 애썼나.. 

기도해본다.

  

 

 

대구성모당에 앉아 가만히 기도해본다.

지금 내가 보는 내 모습이 그분이 바라는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대구성모당은 뭔지 모르게 나를 돌아 보게 만들었다. 대구 성모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