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 파트리치오 축일 3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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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인 세례명 축일

[천주교 세례명] 파트리치오 축일 3월17일

 

성인 파트리치오

ST. PATRICK

St. Patricius, Episc et Confess

San Patrizio Vescovo 

 

"아일랜드 교회의 아버지" 성인 축일을 국경일로 정해 현양


 

성인 성인 파트리치오 (Patrick)
축일 3월 17일 활동년도 389?-493년
신분 주교,선교사 지역 아일랜드(Ireland)
같은 이름

바드리시오,빠뜨리시오,빠뜨리시우스,빠뜨리치오,빠뜨리치우스,파트리시오,파트리치우스,파트리키오,파트리키우스,패트릭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꿈 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한 그는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킬랄라(Kilala) 만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항해 준비를 마치고 있던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노예 생활을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명에 따라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를 회개시키려는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432년경에 성 게르마누스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들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아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4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그것은 일종의 호교서이기도 하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493년 3월 17일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상징은 뱀과 토끼풀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렸다는 것과 그가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녹색 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