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배론성지 (배론성당, 황사영백서, 최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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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원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배론성지 (배론성당, 황사영백서, 최양업)

 

 

원주교구 배론성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http://www.baeron.or.kr

☎  043-651-4527

 

 

배론성지는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썼고, 최양업 신부님의 무덤이 있는곳이다.  

그 성스럽고 거룩한 땅 충북 제천 배론성지로 향한다.

 

 

성지로 가는길에 크고 작은 펜션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 (985m)과 백운산 (1,087m)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계곡주변으로 자연휴양림을 비롯해 많은 펜션들이 눈에 띈다. 

 

이렇게 험준한곳에 우리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숨어서 지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오직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의 키워 나간 교우촌이

지금 우리가 향하는 배론성지다.

 

 

배론성지 관내 약도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 118호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1801년(순조1) 신유박해때 황사영 알렉시오 (1775~1801)가

이곳 배론의 산중에 피신해 토굴속에서

주문모 입국 후부터 신유박해에 이르기까지의 교세 및 박해의 상황,

천주교를 널리 펼칠 방책등을 명주천에 적어서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구메아 (Gouvea,A. de)주교에게 전달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밀서를 '황사영 백서(帛書)'라고 하는데

이 사건이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한층 더 가혹하게 되었다. 

(현재 백서는 로마교황청 민속 박물관에 소장중이다. )

 

그리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생이며 김대던 안드레아 신부님에 이어

두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토마스 (1821~1861) 신부님의 무덤이 있는곳이다.

 

그래서 이곳 배론성지의 로고는

아래 황사영 백서(帛書)를 상징하고 그 위에 배론성지 글씨는체는

초대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님의 친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위에 녹색은 최양업신부님의 '관모'를 상징하면서도

배(대성당)의 모습을 표현한것이라고 한다.

 

 

 

잔디광장옆에 묵주의 기도(로사리오)길이 있다.

회양목 한그루마다 성모송을 바칠수 있게 되어있었다.

 

 

바닥에 미로 같은 그림이 있고 그앞에 세워진 약속의 땅으로 가는길..

 

역사 중심을 향한 미로의 기도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종교적 상징을

4세기부터 교회가 채택하여 중세기에 와서는 기도형태로 널리 쓰여졌다고 한다.

 

미로와 같이 오가는 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거룩한 순례임을 직접 체험하며

몸과 마음으로 걸으면서 내마음 깊숙이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거기서 빛과 힘을 얻은 후에 다시 세상으로 파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된다면 미로속을 거닐며 기도해도 좋을것 같다.

 

 

배론성지 주차장 입구에서 대성당으로 향한다.

 

 

 

 

오른쪽 큰배 (대성당)과 왼쪽에 작은배 (소성당)이 나란이 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건립된 성당은 배모양으로 설계 시공되었는데

첫번째 이유는 배론이라는 이곳의 지명대로 골짜기의 모양이 배 밑바다거럼 생겼다고 해서 지었고

두번째 이유는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듯 구원의 배를 이해하고 표현한듯이라고 한다.

세번째 이유는 최양업 신부님이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몇차례나 배를 타셨던 그 선교의지를 본받고자 하는뜻이라고 한다.

 

  

 

대성당 입구

  

 

대성당 입구 오른쪽에는 최양업 도마 신부상이 보인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본다.

 

 

역광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청동으로 만들어진 성모자상이 보인다.

 

 

대성당의 내부 모습

 

성당의 명칭은 이배를 인도해주실 성모 마리아를 주보삼아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기리는 바다의 별 대성당"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소성당 내부 모습

 

두 성당이 모두 배 모양을 하고 있었고 닮은듯 다른모습이다.

 

 

 

소성당 유리화

노틀담 수녀회 김겸순 (마리 테레시아) 수녀님의 작

익숙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예전에 매일미사책 표지를 그리셨던 수녀님이시다.

 

 

소성당 십자처

금속판에 아크릴릭으로 만든작품

 

 

 

성당에서 나와 배론성지를 둘러본다.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최양업(토마스)신부는 1836년 12월 중국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고,

184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2년 동안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영혼을 구하려는 불같은 열정, 그리고 훌륭한 판단력 등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과로로 1861년 6월 문경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 해 11월 성요셉 신학교 뒷산 언덕에 묻혀 사제의 길을 걸으려는 후학들의 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었고

납골당도 함께 있었다.

 

 

 

조금전에 봤던 성당의 뒷모습

정말 배 모양을 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집

 

 

황사영 순교 현양탑

 

높이 20m로 입체 4면 종탑 누각형으로 "황사영순교현양탑' 이라고 판각되어있다.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설치되어있고

누각 내부에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종 3개가 달려있다고 한다.

정면에 황사영의 동상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황사영의 후손인 황병위씨가 기증했는데

이 동상이 북한에서 제작해서 일본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멀리서 봐도  옷깃이 바람에 날리듯 아주 자여스러운 모습이다.

 

 

 

원주교구 배론성당

 

 

 

들어가보려고  했더니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무명순교자의 묘

 

 

성요셉 성당과 배론 신학교 입구

 

배론신학교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다.

1831년 설정된 조선교구 파리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하게되었는데

조선인 사제를 양성해 1836년말 마카오 유학을 보냈는데

이때 보낸 3명의 신학생이 바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였다.

 

세 소년은 중국 대륙을 지나 마카오로 가서 신학생이 되었다.

이들은 쇄국 조선에서 서양 학문을 익히기 위해 해외로 보내진 최초의 유학생들이었다.

 

김대건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1845. 8.17)

그 이듬해 1846년 9월15일 새남터에서 순교했고

최양업은 1849년 4월15일 두 번째 사제로 서품되어 12년간 고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1861년 6월 병으로 선종했고

최방제는 유학을 떠난 다음해에 바로 병사했다.

 

 

배론 신학교의 주보성인인 성요셉

 

 

성 소화데레사 상이 보인다.

 

 

 

배론성지 연못

 

연못을 내려와 배론 성지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차에 오를수 밖에 없었다. ㅠ

단체 성지순례의 단점...

 

다음에 다시 배론성지를 찾아야겠다.

그래서 꼭 더 둘러보고싶은 곳이있다.

 황사영 토굴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묘

 

 

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