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신나무골 성지 (대구교회 첫 본당터, 이선이 엘리사벳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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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대구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신나무골 성지 (대구교회 첫 본당터, 이선이 엘리사벳묘)

 

 

신나무골 성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산 57번지

 

 

 

신나무골 성지 입석

 

 

천주교 대구교구 요람지 신나무골 성지 안내

 

이곳 경상도 칠곡의 신나무골은 일찌기 불국인 신부들이 대구로 진출할 전초 기지로 삼았던 한적한 촌락으로

최양업, 다블뤼, 리텔 신부등이 사목 활동을 했던곳이다.

1815년 박해이후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였다.

 

 

 

◀ 샤스탕 야고보 신부님

1831년 조선교구 창설후, 1837년부터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샤스탕 야고보 신부가

신나무골과 언양 등지에 머물면서 한반도 남쪽 지역을 맡아서 전교를 하기 시작했다.

역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과 전교회장들이 이곳을 왕래하며 전교가 이어진 가운데

1837년 샤스탕 신부님의 명을 받고 이곳에서 와서 1년간 전교회장으로

성 홍병주(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형제회장이 전교활동을 하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때 샤쓰탕 신부님과 같이 서울에서 순교하여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하여 103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또한 1860년 경신박해때 이선이(엘리사벳)과 장남 배 스테파노가

이곳에 피난와서 살다가 순교하였다.

그후 1885년 12월 대구 첫본당 신부로 임명된 김보록 신부가 이곳

이이전(안드레아)댁에서 거처하면서 대구교회를 설립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을 사목하였다.

1883년 신나무골 학당이 설립되어 1920년까지 이르렀고

현재도 이마을에 구 천주교우들의 신자촌으로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신나무골에서 한티 성지 순례 33km  산길 코스의 시작이기도 하다.

 

 

 

신나무골 성지는 1894년 가실성당 소속의 공소였다가

1926년 왜관본당에 소속되었고,

1968년 신동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다시 신동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성지 가운데 있는 묘는

순교자 이선이(엘리사벳) 묘소와 순교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제대가 놓여져 있다.

 

◀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아들 배도령(스테파노)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소는

1984년에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맞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주선으로

1860년 경신박해때 이곳 신나무골에서 살다가 한티로  피난가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아들 배도령(스테파노)와 함께 순교한 이선이의 묘를 

한티에서 다시 이곳 신나무골 성지로 이장한것이라고 한다.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중앙제대

 

 

이선이 엘리사벳 묘소

 

 

이선이 엘리사벳 순교비

 

 

 

 

 

묘비 뒷면에 깨알같은 글씨로

이선이 엘리사벳 성인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성지 왼쪽에는 작은 성모상이 있다.

 

 

 

Maria Rosa Mystica 신비로운 장미

 

 

 

 

 

묘소를 내려가면

 

 

  

 

 (사진출처 : 굿뉴스)

대구교회 첫 본당터가 있다.

1885년 12월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목책임을 맡은 김보록 신부가 처음으로 본당을 설립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김보록 신부님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그리고 역사자료들이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