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마원성지 (복자 박상근 마티아 묘소를 모신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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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안동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마원성지 (복자 박상근 마티아 묘소를 모신곳)

 

 

안동교구 마원성지

충청북도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599-1

☎ 문경성당 054-572-0531

 

 

 

 

안동교구 성지

 

문경성당에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선종지였던 진안리 성지를 지나

이곳 마원성지로 향한다.

 

 

조용한 마을 입구에 서있는 마원성지 입석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성모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마원성지에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문경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 교우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당시 경상도 북부 지역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칼레 신부를 모시며 신앙생활을 했던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의 유해가 모셔져있는 곳이다.

  

 

 

야외에 제대와 그위에 성인의 묘가 보인다.

 

 

 

 

복자 박상근 마티아 (1837~1867) 

 

박상근 마티아는 경상도 문경에서 아전(하급 관리)을 지낸 사람으로,

중년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교리의 가르침을 착실하게 지키면서 생활하였다.

또 관청에 있었으므로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깔레(Calais, 姜)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마티아는 좁쌀을 사기 위해 깔레 신부가 숨어 있던 한실(현 경북 문경군 마성면 성내리)로 갔다가

깔레 신부와 함께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신부를 숨겨 주었다.

3일 후 마티아는 깔레 신부와 둘이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기 위해 다시 한실로 가야만 하였다.

이때 깔레 신부는 한실 교우촌이 보이는 산에 오른 뒤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울면서 따라가서 도와드리기로 애걸해보지만 결국 깔레 신부의 명에 순종하여 그와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후 숙모 마리아와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어 상주로 끌려간다.

상주 옥에는 문경 인근에서 끌려온 교우들이 많이 있어 권면하였고,

많은 교우들이 여기에 용기를 얻어 순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나의 30세에 그는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핟다.  

 

 

이곳 마원성지는

1996년 9월 박상근 마티아 순교 130주년을 맞아 조성하게 된다.

 

 

 

 

 

가운데 대형 십자가를 중심으로

왼쪽은 칼레(Calais 1833~1884) 신부의 동상

오른쪽은 박상근 마티아 이 동상이다. 

 

 

 

 

동상도안을 설명하고 있다.

 

장한 믿음! 장한 우정! 

이곳 마원성지는 어떻게 생각하면 축소판 백화산 (106.5m)이다.

왜냐하면 병인년 박해를 피해 그 당시 선교사인 깔레 강신부님과 평신도 박상근 마티아가

백화산 사눚ㅇ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한 사제와 평신도가 번민과 갈등속에서 다졌던

장한 믿음과 우정을 표현하는 동상이 이 동산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실에서 문경읍내 자기집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강신부님을 모신 박 마티아 졸지에 포졸들에게 들켜 백화산으로 한밤중에 달아나면서

넘어져 상처투성이로 강 신부님을 모시고 피신을 했건만, 죽을 지경이된 마티아, 신부님은 본마음과는 달리

마티아를 위해서 준엄한 명령을 했었다.

신부님은 죽어도 함게 죽겠다던 마티아의 통곡을 안된다고 외쳐대는 이 부르짖음을 어이 보고만 있을 쏜가!

신부님도 울고 마티아도 울었다.  이를 지며보던 산새들도 초목들도 모두가 울었으리라.

서로를 사랑하기에 헤어져야만 하는 이 쓰라린 아픔을 그 누가 알리요. 가져온 것이라고는 마른 과일 (꽂감)  조금뿐.

그것을 반으로 나눠 갖고 천국에서 만나자던 이별의 한을 그 어느 누가 풀어주랴!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아혀 나를 버리셨나이까?" 를 깨달은 부활하신 주님만이 이 한을 풀어주시리라

"어서 오게 친구여, 어서 들라 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