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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라

[전라도여행] 남원 광한루원 (춘향전의 배경이 된곳)

 

 

남원 광한루원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 (천거동 78번지)

http://www.gwanghallu.or.kr/

☎ 063-625-4861

개장시간 : 8:00 ~ 20:00

주차료 : 2,000 (당일주차)

입장료 : 어른 2,5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광한루원 지도>

 

전라도 여행 남원 광한루

우리나라에는 4대 누각이 있는데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그리고 이곳 남원 광한루다.

 

계획대로라면 구례에서 곡성으로 가야했지만 지인과의 저녁약속으로 구례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그냥 있기도 뭐해서 근처 남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이란 이렇듯 계획대로 되는게 여행이 아니지.. 그속에 더 즐거움이 있는지도..

 

춘향이의 고향이자 남원 광한루원으로 향한다. 

 

 

남문이 정문인데 공사중이여서

우리는 서문으로 들어선다.

 

 

 

광한루 입장료

어른 2,500원

 

 

안내지도를 보면서 발길을 옮긴다.

 

 

 

저 멀리 돌다리 오작교가 보인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인데..

성춘향와 이몽룡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했는데

해마다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안타까운 천상의 사랑을

춘향이와 이도령을 통해 완성시킨 사랑의 다리로 의미를 두고 전설을 형상화 한것이다.

그러니 이 호수는 하늘의 은하수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돌위에 팔을 탁 걸치고 서있는 버드나무 ㅋ

 

 

이 왕버들 나무는 1582년 조성당시에 함께 심어졌다고 한다.

430년이 넘은 나무구나..

 

 

 

 

 

오작교 아래에 잉어들이 바글바글.

 

 

사람들이 기증한 잉어로 3천여마라의 토종잉어와 비단 잉어라고 한다.

잉어의 수명이 70년~80년이라니..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잉어 먹이 사는곳..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흔히들 알고있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

1년에 한번 칠월칠석날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는 그들을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난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다리다.

 

선교15년에 남원부사 장의국이 새로놓은 다리에 이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라나 어쩐다나..

 

 

 

광한루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黃喜)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626년 당시 남원부사인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보물 제 281호)

 

 

광한루 앞에 자라돌(鼇石오석)

자라돌이 삼신산을 바라보고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이 앉아 있는 특이한 바위다.

 

 

자라옆에 설명을 적은 석판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동해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자라가 등에 산신산(三神山)을 덥고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광한루 연못에 산심산을 지은 후로는 계속하여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삼신산을 업고 있는 자라가 없었기 때문에 섬이 불안정하여 그렇다고 하여

이곳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을 지켜보게 한뒤로 부터는 그 천재지변이 사라졌다고 한다.

높이 1.2m, 폭 1.2m, 길이 2.4m

 

 

 

 

아까 자라가 바라보고있던 삼신산(三神山)

신선이 살고있다는 전설속의 삼신산을 섬으로 만들어 조성하였다.

왼쪽 섬이 영주산

가운데는 봉래산

오른쪽 오작교 옆에있는섬이 방장산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은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소담하게 지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한다.

 

먼저 오른쪽 방장정으로 향한다.

 

 

방장정 으로 향하는 다리위에서 바라본 광한루

  

 

반영이 된 모습이 참 아름답다

햇살이 강해서 아쉽긴 하지만..  

 

 

 

방장정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장정이 세워진 시기는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

 

 

 

이도령과 춘향이가 사랑을 나눴던 방장정에

우리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누워서 쉬어본다.

 

 

누워서 천장을 보니..

작은 육각형의 모습이 참 아담해 보인다.

 

 

잠깐쉬다 다시 우리는

 

]

 

반대쪽 영주각(瀛洲閣)으로 향한다.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瀛洲閣)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한주섬(漢州)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

<증보 남원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63년부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1965년에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청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편으로 춘향사당으로 향한다.

 

 

춘향사당

열녀 춘양의 굳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사당이다.

사당의 대문은 단심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임향한 일편단심 이란 의미라고 한다.

 

 

 

열녀춘향사 현판이 걸려있다.

그아래는 토끼와 거북이가 있는거 같다. ..

 

최초 영정은 진주사람 강주수가 그려 기증하고 1939년 가을,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나란히 봉안하였으나

 6.25중에 훼손되어 1961년 기증받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현재까지 봉안되고 있다.

이러한 춘향사당은 1931년 일제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이 주축이 되어 권번의 기생들과 힘을 합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춘향의 절개를 이어받고자 설립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완월정

동쪽으로 향해있는 수중누각으로 춘향제 행사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고있는 곳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월매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는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였다.

 

 

 

동전 4개를 던졌으나..ㅠ

 

 

 

매월 5월이면 광한루원에서 춘향제를 열고있다. 

그때면 춘향선발대회, 국악대전, 씨름대회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더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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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 |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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