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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전북여행] 나바위 성지성당 (천주교성지)



 

 

나바위 성당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http://www.nabawi.or.kr

☎ 063-861-8182

 

 

 

늦은시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바위성당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하고, 목수일은 중국인들이 맡았으며

건축양식은 한국 문화 특성에 맞게 한옥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건축양식을 취해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318호 라는 나바위성당

성지에 도착하기전에 어떤 모습일까 잔뜩 기대를 했는데..

외관 공사중이였다 ㅠㅠ

 

 

 

 

성당앞 기념비뿐... 맘이 쓰린다. 

 

서둘러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성당은 창문이 아름다운 스텐드그라스로 되어있었다면

이곳은 밝고 맑은 창호지로 되어있는게 참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적이구나 생각했다.

작지만 기품있어 보인다고 해야할까..

 

 

성전 제대가운데는 예수 성심상이 있었고

특이할만한 건 가운데 삼각형 모양이다

 

 

1달러짜리에 있는것과 비슷하게 삼각형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뜻한다고 했다.

 

 

제단 오른쪽 감실이다

김대건 신부의 목뼈 조각을 보관하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여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 나바위 성지

나바위 성당은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화산리"라는 지명은 지금 성당을 품고있는 산이 너무 아름다워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다.

성당 이름도 처음엔 산이름을 따서 화산성당이라고 불리우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 부터 나바위 성당이라 부르게 된다.

이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바위가 있는 데 이를 "나바위" 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2월

15세의 어린나이로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골배마실을 떠나 7개월 만인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한뒤,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어 조선에 입국하는데 성공하였다.

 

3개월 뒤인 1845년 4월 11명의 교우들과 작은 목선 라파엘(RAPAEL)호를 타고 제물포를 떠나 6월 4일 상해에 도착

상해 인근의 금가항 성당에서 8월 17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의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후 김대건 신부는 조선에서 함께 출국했던 교우 11명과 함께 페레올주교,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상해를 떠나 조선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폭풍ㅇ르 만나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갖은 고생 끝에

제주도를 거쳐 42일만에 1845년 12월 12일 밤 이곳 황산포구 나바위 기슭에 상륙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베르모렐 신부'가

1897년에 설립해 1906년에 성당 건물을 완공하였다.

 

 

 

 

나바위 성지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고 하셨지만

미사도 드리지 못하고 바쁜 일정에 서둘러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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