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교구] 삼각지성당 미사시간, 홈페이지 (당고개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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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부산외 성당

[천주교 서울교구] 삼각지성당 미사시간, 홈페이지 (당고개 성지)

 

 

삼각지 성당 (당고개 성지)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다길 17-5

☎ 02-795-2821

홈페이지 http://www.samgakji.org/

 삼각지 성당 미사시간 안내

 주일

 토요일 18:00

 일요일 06:00 / 09:00 / 11:00 / 18:00

 평일

 06:00 월요일

 10:00 수,목,금요일

 19:30 화요일

삼각지성당 하늘 묘원

경기도 파주시 정문로 126-101  ☎010-8951-4670

 

 

아침일찍 당고개 성지를 가기 위해 서둘렀다.

어제 김수환 추기경 박물관에서 만났던 한 자매님의 말씀이

"지금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 곧 없어질텐데.. 서둘러 가보시는게 좋으실것 같은데..."

서울온김에 성지를 다 둘러봐야지 하는 욕심으로 당고개성지를 검색 해봤더니 삼각지성당에서 관리중이라 한다.

성당 사무실과 전화통화 결과 안타깝게도 이미 공사가 진행중이라 들어갈수 없다고 했다.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삼각지성당으로 향한다.

12시 미사참례를 위해서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부터 성당이 참 아기자기 하구나 했다. 안에 유치원이라도 있는건가??

 

 

     

 

앗  이거 내가 좋아하는 심순화 카타리나 자매님 작품같은데... 이성당엘 다니시나???

작년내내 그분의 작품이 매일미사표지에 실렸었는데.. 이렇게 또 볼수있다니 기분좋을걸...

하고 들어선 성전의 모습에서 놀랄수밖에 없었다.

성전 모두 한국적 고유 화풍으로 로마 교황청에도 초청을 받으셨던 심순화 카타리나 화가님의 작품들이였다.

 모든 그림들을 참 한국적이게 성모님 얼굴을 어찌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내실수 있으실까 생각했었는데

그분의 그림으로 채워진 성당이라 생각하니 이거 완전 횡재한 기분이다. 이 따뜻한 기운이란..

꼭 그분의 그림 전시회에 온 느낌이였다.

 

  

 

 

그 온화한 기분에 취해 미사가 더욱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신부님의 말씀또한 가슴을 또 한번 적시게 만든다.

모든 분위기들이 흐트러짐없이 모두 한데 어울어지는 느낌이였다..

 

 

 

 

성당 유리한지화는 착한목자, 성모자그림과 이곳 10분의 순교성인 성화로 그려져 있었고

 

 

 

십자가의 길 14처 또한 카타리나 자매님표 그림으로 만들져 있었다.

십자가의 길 그 우울한 슬픔의 길이 왠지 따뜻한 슬픔 같이 오묘한 기분.. 

 

 

 

 

당고개 성지를 가지못한 아쉬움이 이성당의 따스함과 신부님의 말씀으로 사르르 녹아 내리는 기분이였다.

아기자기한 성전의 모습 만큼이나 곳곳에도 작품들이 숨겨져 있었고 

 

 

 

하나하나 감상하는 기분 또한 좋았다.

 

 

 

 

 

 

누군가의 섬세함이 녹아내려있는 아기자기한 성당 삼각지 성당

다녀와서 알았지만 원래 심카타리나 자매님 그림으로 유명한 성당이였다. ^^;

혼자 바보같이 호들갑을 떨었구나 .. 했다.

 

 

 

 

성체조배실 또한 한국적으로 따뜻하게 차려져 있다.

저안에서 잠깐이라도 조배를 하고 싶었지만..짧은 서울여행의 시간이 여의치 않다.

 

 

 

 


 

가보진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당고개는 

기해박해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망나니들의 칼날로 다시금 10분의 순교자를 탄생시킨곳이다.

서소문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성지인셈이다.

하지만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성식때 아홉분만이 성인품에 오르셨다.

성녀 권진이 아가타,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 이경이 아가타, 성 이문우 요한

성녀 이인덕 마리아,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그리고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

 

그녀가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이러하다.

남편(최경환 프란치스코) 그리고 다섯아들과 함께 이성례 마리아는 옥에 갇히게 된다.

그때는 이미 장남 최양업(토마스)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에서 유학중이였을때 일이다.

신학생을 둔 어미의 옥살이야 말할것도 없거니와 빈젖을 빨던 세살짜리 젖먹이 스테파노가 첫옥사자가 된것이다.

그 젖먹이가 죽자 그녀는 실성을 하게된다. 어떤 어미가 죽은 아이를 보고 실성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자식들을 줄줄이 잃을수만은 없겠다는 그녀의 모성애로

결국 배교하겠노라고 말을 하고 네아들들을 데리고 풀려나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는 어린 아이들과 서울의 골목골목을 걸식하며 다니게 된다.

옥에 갇히 남편생각에 정신을 차릴때쯤 아이들이 동냥간 사이에

그녀는 다시 제발로 걸어 들어와 남편곁으로 돌아와 갇힌 몸이된다.

창살을 붇들고 어머니를 목메어 부르는 네형제에 모습에서  또다시 배교를 하게될까 겁이난 그녀는

둘째에게 일러준다.

"이제는 다들 가거라. 천주와 성모마리아를 절대 잊지 말아라, 하느님 계명을 잘 지키고,

서로 화목하게 살거라.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맏형(최양업)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다"

라고 타이르며 몇일동안 오지말라고 일러준다.

그 몇일동안은 그녀가 처형되는 날이 이기도 하다.

더 슬픈 일화는 이아들들이 동양한 몇푼과 쌀자루를 메고 망나니를 찾아나선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지않게 단칼에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밤새 칼을 갈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망나니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에 눈속으로

그렇게 그녀는 39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게된다.

모성애로 인해 일시적으로 배교한 그녀는 그래서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것이다.

 

성당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 다니더라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면

어떻게 어린자식들을 넷이나 버리고 부모가 그럴수가 있냐고 이해 할수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어찌보면 내게도 큰 의문이였고 혼돈이였다.

하지만 오늘 다녀와서 내가 깨달은건

그녀는 그녀자신과 그녀의 자식까지도 온전히 하느님께 모든것을 내놓은 것이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그 상상할수 없을 만큼 몇배로 그녀는 가슴에 더 큰못을 안고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모든것을 초월했다는 것일것이다.

성인품에 오르시진 못하셨지만... 뭐 그런거야 사람들이 만든거구

저기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가족들과 함께 이제는 영원히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