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용수성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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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가톨릭 성지

[제주교구 천주교 성지순례] 용수성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

 

용수성지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66

☎ 064-772-1252

미사 : 매 주일, 화요일 19:30 (하절기 20:00)

 

천주교 제주교구 성지

관덕정 https://simjuliana.tistory.com/2598

대정성지 https://simjuliana.tistory.com/102

황사평성지 https://simjuliana.tistory.com/2605

새미 은총의 동산 https://simjuliana.tistory.com/101

김기량 펠릭스 현양비 https://simjuliana.tistory.com/2604

용수성지 https://simjuliana.tistory.com/2627

황경한 묘소

 

 

 

 

제주교구 천주교 성지

관덕정, 대정성지, 황사평성지, 새미 은총의 동산, 김기량 펠릭스 현양비, 그리고 이곳 용수성지와

그리고 배를 타고 추자도를 가야 하는 이유인 '황경한 묘소'까지

천주교 제주교구의 성지 모두 7곳이다.

 

 

제주도 용수 성지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사제라는 신분으로 맨 처음 한국땅을 밟은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이 천주교의 시작(?)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곳으로 들어오시려고 하셨던건 아니다.

중국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인천항으로 들어가시려고 했지만

풍랑을 만나 이곳으로 들어오시게 된것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라파엘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그가 부제때 잠시 조선에 들어와 당시 돈 146원으로 선박을 구입해 '라파엘호' 라 명명하고

1845년 4월 30일 천주교 신자 12명과 함께 제물포항 (현, 인천항)을 떠나 상하이로 갔다.

이후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24세때 한국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후 페레올 주교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상해항을 출발해 서해 바다로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한 곳이다.

 

그때 타고오신 라파엘호를 고증으로 배를 복원한 모습이다.

 

 

 

 

기념관을 둘러볼 뒤 성전에서 조배를 할 생각이다.

 

 

용수성지의 표착기념성당 미사시간은

원래 매주 주일에만 있었는데

매주 화요일도 추가 되었다.

하절기는 오후 8시, 동절기는 오후 7시30분

 

 

기념관으로 향한다.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은 2층으로 구성된다.

 

 

1층

순교자를 아프게 했던 형구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 공경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한다.

계단 벽면에 전시된 사진들

 

김대건 신부님께서 1844년 사제품을 받으셨던 상해 진쟈상 (금가항) 성당

 

 

성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서품 후 첫 미사를 봉헌한 횡당성당(상하이 예수회 소신학교 성당)

 

 

 

2층 입구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눔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께서 만일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누가 과연 당할 수 있으리이까

 

 

김대건 신부님의 흉상

 

 

제주도에 표착했던 주교님과 성인들

 

1845년 8월 31일 조선 입국을 위해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를 모시고 함께 갔던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하이 항을 떠났다. 출항한 지 3일 만에  서해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제주 용수리 포구에 표착하게 되었다.

여기서 2∼3일 정도 배를 수리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여 10월 1일 포구를 떠난 김대건 신부 일행은

10월 12일 금강 하류의 나바위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옥중 서한

 

 

 

 

조선 천주교회가 박해받은 실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천주교회의 재건책을 호소하며,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오라는 편지를 황심(黃沁)과 옥천희(玉千禧)로 하여금 음력 10월에 떠나는 동지사 일행에 끼어서

 중국 천주교회 북경교구의 주교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적발되었다.

 

그래서 부인인 정난주는 제주도로

두 살 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된다.

 

 

황사영 백서

 

 

 

한국에서의 첫미사 봉헌 모형도

 

 

 

 

 

기념과 옥상에서 바라본 차귀도

 

 

예전에 왔을때 일몰이 참 아름다웠던 차귀도

 

 

 

 

 

옥상에서 바라본 라파엘 호

 

 

기념성당으로 향한다.

 

 

그날의 그들의 희생으로 제가 지금 이렇게 당신앞에 편안히 기도를 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