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해남 두륜산 대흥사 (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글씨를 볼수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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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전라

[남도여행] 해남 두륜산 대흥사 (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글씨를 볼수있는곳)

 

 

  남도여행 2박3일 일정

  안읍성 - 벌교성당 - 사의재 - 윤선도 유물전시관, 녹우당 - 두륜산 대흥사 - 땅끝마을 땅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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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 061-534-5502

 

두륜산 산기슭

그곳에 아름답게 자리한 절 대흥사로 향한다.

두륜산은 703m로 남서쪽의 대둔산과 함께 자매봉을 이루는 산이다.

간혹, 두륜산 이라는 이름보다 이곳에 자리한 대흥사 탓인지 대흥산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두륜산엔 대흥사와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 장의순이 40년동안 수도 생활을 했던 일지암이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 일대는 예로 부터 한국 고유의 차와 다도(茶道)로 널리 알려지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역시나 대흥사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부터 전통 다원이 보인다.

간판에 풀향다원이라 적혀있다.

가을 단풍과 함께 어울어진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아름다운건 모두가 느끼는게 같나보다 오고가는 사람마다 한장씩 추억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대흥사로 가기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몇해전 1박2일로 많이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여관 유선관도 만날수 있었다.

유선관은 따로 블로깅 http://simjuliana.tistory.com/297

 

두륜산에 찾아온 가을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가을엔 향기가 없다지만 나는 가을만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을의 향기는 코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거 같았다.

옷을 여미는 손끝에도, 두 뺨을 스치는 바람속에도 왠지 스산한 가을의 향기를 느낄수 있었다.

몇개의 다리를 건너 드디어 도착한 대흥사입구

"두륜산대흥사" 입구다

그안에 적혀있는 "해탈문"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대흥사하면 빠질수 없는 인물 원교 이광사 (1705~1777)

그는 조선후기 문인서화가 이다.

석봉체를 썼던 한호 이후 조선적인 글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글씨풍의 조선화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시,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글씨에서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이룩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처럼 이곳 대흥사 전각들에는 조선후기 서예의 양대 산맥이었던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가

원교의 제자이며 호남의 명필이었던 창암 이삼만, 그리고 정조대왕이 친필로 쓴 편액이 걸려있다.

명필을 감상하는 것도 이곳 대흥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는 사실 불교에 대해서 잘모르지만

보통 이런 입구에 문에 들어서면 사대천왕 이라는 살짝 무시무시하게 생긴 모습을 한 나무 인형(?)들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귀엽게 생긴 동자스님(?)이 코끼리를 타고 계셨다.

입구에 들어서니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져 있다.

저기 뒤에 산이 부처님이 누워계신 모양이라고 한다.

정말 그러고 보니 그렇게 보인다. ㅋ

 

연리근

연리지는 많이 봤는데 연리근은 첨본다.

연리지가 다른 두나무가 같은 나무가지를 가지게 되는거니까 연리근은 다른 두나무가 뿌리가 같안진거겠지 ㅋ

이곳 대흥사의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라고 한다.

왼쪽이 음의 형태고 오른쪽이 양의 형태로 천년동안 사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나무 아래 초를 켜고 기원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두 나무가 같은 뿌리를 내릴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고 고갤 잠깐 숙이려는 순간

 

종소리가 들린다.

종이 참 크다.

우리는 대웅보전으로 향한다.

 

 

수희 동참

수희? 무슨뜻일까 냉큼 찾아봤다ㅋ

불법을 따르고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을 베푼다는 뜻이구나.. 하나 알았네

 

 침계루

대웅보전

이글 또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이 편액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폄하했던 유명한 일화이다.

 

추사 나이 54세, 그는 기고만장한 삶을 살면서 당시 형조참판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외교사절로 북경으로 떠나려 할때 정변이 일어나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다행히 친한 벗이였던 영의정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제주도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전주와 남원을 거쳐 완도로 가던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려 벗인 초의선사를 만난다.

이때 대흥사 현판에 걸려있던 원교의 대웅보전 글씨를 보고 초의선사에게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 놓은것이 원교인데, 어떻게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 놓을수 있는가 하며 호통을 쳤단다.

추사의 극성을 못이긴 초의선사는 원교의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고 한다.

그러던 추사 그의 나이가 63세가 되던해

노령에 해배된 추사는 한양에 가는 길에 다시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에 들렸고

자신이 쓴 대웅전의 현판을 올려다 보게된다.

그리고 그 편액 속에 담긴 자신의 교만과 독선을 깨닫게 된다.

추사는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시를 못알아보았으니 그의 현판을 다시 걸고 자신이 쓴 편액을 내려달라고 말한다.

추사 김정희가 8년여 간의 힘든 유배 생활동안 깊은 자아 성찰을 통해 겸손과 지혜를 깨달은 것이라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 무량수각이다.

대웅전 옆 승방인 백설당에 걸려있는 편액이다.

원교의 글씨가 역동적인 느낌이라면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는 묵직하고 두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감히 평가를 해본다면 말이다.

확실한건 정말 두사람의 글씨가 상반된다는 것이다.

 

대웅보전 옆에 이곳은 윤장대라고 한다.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간즈에서 봤던것과 비슷해 보였다.

 

경전을 읽는것과 똑같은 공덕을 쌓는거라고 해서

나도 세번 돌려봤다. ㅋ

대흥사에 용은 불대신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른쪽 성보박물관에 가면 더욱 다양한 유물들을 볼수있었지만

우리는 아쉽게 그대로  돌아나서야만 했다

오늘 땅끝마을에 들렸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일정에 많은 걸 보려는 욕심을 가지고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아쉬움은 더해지는것 같다.

저땐 새로운 다른곳을 또 여행할 기대에 못했던 아쉬움이긴 하지만 말이다.

돌아 나오는길 연못이 너무아름답다.

햇살을 가득 받은 가을이 신비롭기 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