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해남 김남주시인 생가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해남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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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전라

[남도여행] 해남 김남주시인 생가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해남 볼거리


 

  남도여행 2박3일 일정

  안읍성 - 벌교성당 - 사의재 - 윤선도 유물전시관, 녹우당 - 두륜산 대흥사 - 땅끝마을 땅끝탑 

- 보길도 (망끝전망대, 공룡알해변, 예송리해돋이, 곡수당, 낙서재세연정) - 땅끝성당 - 미황사 - 김남주시인생가

- 설록 강진다원 - 월남사지삼층석탑 - 영암한옥마을 - 백련사 - 강진만 - 장흥토요시장 (장흥삼합)

김남주 시인 생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535

 

시인 김남주

1946.10.16 ~ 1994.02.13

 

사람들은 그를 혁명과 투쟁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생전에 스스로를 "어어, 나는 시인이라기 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 라고 말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의 생가에는 현재 그의 동생이 살고있다고 한다.

 

작은 이정표 하나 없이 산골 언덕 고즈넉한 자리에 그의 생가가 있었다.

 

김남주는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사회 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시인이며,

혁명적인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시인이었다.

1945년 전남 해남군 봉학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삼화초등학교, 해남중을 거쳐 광주일고를 입학하였으나

입시위주의 교욱에 반대해 자퇴한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중 '3선개헌반대투장'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 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진혼가」등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작가 황석영등과 함께 '민중문화 연구소'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 구속되었으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두차례에 걸쳐 도합 10년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470여편의 시 가운데 300여편이 옥중에서 쓴시이며,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1988년 1월 가석방 되어 출소한 그는 민족 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 윤상원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작고 이후에 민족 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는  「진혼가」「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솔직히 말하자」「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나와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등이 있다.

 

표지비에 나와있는대로 그는 펜을 들고 세상과 맞싸운 혁명가이고 전사였다.

아마도 사람들은 표지비에 적힌 "김남주"라는 시인보다

내가 아는 시인 김남주처럼 그의 시에 곡을 붙혀 만든 노래들일것이다.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늘 투쟁과 항쟁에 쓰여지는 노래라 거칠게 느껴질수 있지만

가끔 이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그가 옥중에서 가슴으로 늘 외치던 함성이였으리라..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줄 안다... 절대 빈곤과 절대빈민 없는 세상

기득권자들의 의해 흔들려가는 세상의 비명소리를 시로 아름답게 노래한듯 하다.

 
 

그의 생가 마당에는 그의 시들이 석판에 새겨져 벽에 전시되어있었다.

한줄한줄 그의 외침들을

가슴에 한줄한줄 되새기는 시간이 될수있었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그곳에서 시인 김남주의 눈물과 부르짖음이 울려퍼지는듯 했다.